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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후예는 어디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6호 07면

일러스트 강일구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예요?”라는 꼬마 아가씨의 당찬 물음에 서태지가 허탈해하는 TV 광고. 그를 대장으로 여기며 10여 년을 보내온 세대를 웃음짓게 하는 그 대화는 집에서 흔히 아들과 내가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 열네 살 우리 집 아이는 신승훈·변진섭을 ‘동안의 얼굴에 노래를 굉장히 잘하는 아저씨’로, 조용필을 ‘외모는 늙었는데 노래는 젊고 세련된 걸 하는 아저씨’ 정도로 알고 있다.

이윤정의 TV 뒤집기

신곡 ‘모아이’가 아이의 mp3에 담겨 있기에 내심 ‘서태지는 모자가 공유할 수 있는 아이돌이 되겠다’ 싶었지만 최근 교향악단과 협연하는 공연 중계를 함께 본 아이는 “이 아저씨는 뭔가 어둡고 폐쇄적인 느낌에 가사는 과격하고…”라면서 그의 전설적인 인기에 낯설어했다. 확실히 요즘의 주류 아이돌 음악과는 차이가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아이가 “저 사람은 누구야? 진짜 그렇게 대단했어?”라고 물어볼 때마다 그들을 아이돌로 모시고 살아왔던 이전 세대는 아연 활기를 띠며 엉성하게 알고 있는 한국 가요사를 자랑스레 읊는다. 조용필이 부려놓은 그 세련된 팝·록의 향연들이 1980년대의 가요계에 내렸던 뿌리들, 해외 첨단 음악의 해석과 재창조를 통해 90년대 이후의 X세대 문화와 음악산업까지 뒤흔들어 놓았던 문화 대통령 서태지의 업적들을 떠올려 보라.

그들이 수많은 뮤지션 중에서도 시대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건 역시 끊임없이 새 조류를 흡수하고 변용하고자 했던 새로움에 대한 지속적인 갈망 때문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들 같은 ‘혁신가’들을 주류의 ‘권력자’가 될 수 있도록 그 시절을 함께 만들어 왔던 문화 수용자 우리들에 대한 뿌듯함도 새록새록하다.

아이의 말처럼 서태지의 ‘음습한 매니어’적인, 혹은 마이너적인 록의 감수성이 대중을 지배했던 90년대의 그 화려했던 오버그라운드 시대는, 그들이 앞서서 새 문을 열고 이끌면 우리는 함께 정신없이 눈높이를 높여 따라가면서 대중문화가 풍성해지던, 행복한 때였다.

하지만 이후 우리 아이 세대의 아이돌과 오버그라운드는 어떤가. 과연 현재의 대중가요는 이후 세대들이 자신의 아이에게 자랑스럽게 전해줄 만한 가요의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는 걸까. 우리 아들은 자신의 아들에게 이 시대의 가요를 어떻게 전할까.

잃어버린 10년은 보수정치 세력들만의 넋두리는 아니다. 서태지의 등장 이후 아이돌 그룹이 쏟아져 나오고 뮤직보다는 비즈니스가, 한류가 강조되면서 음악계에서는 조용필과 서태지 같은 영웅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아니 등장할 수 없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혁신가로서의 뮤지션보다는 소비자들의 예상과 입맛을 정조준한 음악 사업만이 횡행하면서 세련되고 화려해지고 규모가 커지긴 했지만 이 시대를 대변하고 흐름을 주도하는 뮤직 히어로는 10여 년째 그림자조차 찾을 길이 없다.

무단 복제와 공짜 다운로드, 돈·뇌물·검은 커넥션에 물들어 간 방송의 음악프로 등 초토화된 음악산업계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역시 그것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은 다시 새로운 시대의 음악으로 대중들을 휘몰아칠 수 있는 혁신가의 등장뿐이다.

비와 보아의 국제적인 성공, 아이돌 스타의 완성형을 만들어 가는 빅뱅, 파워풀한 동방신기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건 그 때문이다. 영향력이 있는 그들이 혁신가가 됐을 때 대중가요는 전진할 수 있다. 아이돌로 시작해 대중음악의 역사로 남았고 현재에도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위대한 선배들의 업적을 재현하는 그들의 질적인 도약을 기대한다.


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 출신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filmpoo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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