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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볼 권리보다 동물의 살 권리가 우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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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15면

이른바 ‘삐삐 롱스타킹 찾아 삼만 리’.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30분에 한 번꼴로 만난 마을 주민과는 간단한 영어조차 통하지 않았고, 표지판을 찾아 쾌재를 외치고 나면 4차로 고속도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오후 네다섯 시만 되면 영업이 끝나는 유럽의 관례에 여러 번 허탕을 쳤던 우리는 조급해졌다.

‘서른 셋, 서른 넷’ 부부의 유럽 여행기

그렇게 물어 물어 어렵게 당도한 린드그렌 마을! 하지만 그곳은 비 오는 날의 놀이공원처럼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미니어처로 재현한 린드그렌의 동심의 세계는 찬탄할 만한 것이지만 우리가 고생한 대가에 비하면 초라했다. 나는 걷느라, 굶느라, 길 찾느라 지칠 대로 지친 남편의 볼 파인 얼굴을 보자 측은지심이 솟았다. “여보야, 우리가 아마 대한민국에서 삐삐 롱스타킹 마을에 온 세 번째 사람일 거야.” 그 말에 금세 힘이 났는지 미소를 살짝 지으며 덧붙이는 고지식한 그다운 한마디. “세 번째는 좀 과장이고, 다섯 번째 정도는 되겠지?”

스웨덴 여행의 또 다른 표적은 동물원이었다. 일전에 ‘스웨덴에는 동물원이 없다’는 골자의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고, 로드 킬을 다룬 ‘어느 날 길 위에서’와 동물원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별’이라는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자극을 받았던 터였다. 물론 스웨덴에 동물원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스웨덴에는 번듯한 ‘스칸센 동물원’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질적 의미에서 스웨덴에는 동물원이 없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친환경적으로 설계된 스칸센 동물원에는 여우와 곰이 공존하는 방만한 규모의 숲이 있고, 바로 그 곰이 먹이를 뜯어먹으며 포효하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다. 심지어 위협적인 두 뿔을 달고 있는 버펄로는 우리라고 할 수도 없는 낮은 울타리 속에서 유유히 걷고 있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버펄로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남편에게 “조심해!”를 외쳐야만 했다. 스칸센 동물원 직원이 우리에게 “해 지기 전에 빨리 나오세요. 동물들이 당신들을 잡아먹을 수도 있으니까요”라고 농을 던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동물의 세계에 나약한 인간이 끼어든 기분이랄까.

우리는 그쯤에서 이 나라가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공공 디자인 부문에서 선도적이라는 것, 국민 소득에 비해 사람들의 외양이 검소하다는 것, 그리고 친환경적 동물원 설계가 가능한 나라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케아(IKEA)의 정신 “스웨덴에서 자란다면 소외 계층도 일반인이나 상위 계층과 똑같이 누려야 한다는 것을 부모님이나 사회를 통해 배울 수 있다”와 동일한 ‘같이 누리자’는 민주적 공공성이다.

우리가 처음에 느꼈던 스웨덴의 우울한 정취는 스웨덴 사람들에 대한 경외감으로 전복되었다. 우리가 처음에 던졌던 질문, “이 사람들이 그렇게 잘사는 사람들이란 말이야?”는 “인간이 그렇게 이타적일 수 있단 말이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1인당 국민소득이 9만 달러가 넘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노르웨이는 어떤 곳일까? 주부인 내게는 사실 ‘노르웨이산 고등어’로 더 잘 알려진 나라. 우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8시간 넘게 유레일로 내달려 오슬로 중앙역에 도착했다. 다른 나라의 중앙역과 달리 역 앞을 서성거리는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사람들.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의 ‘절규’가 오버랩되자 왠지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물을 사러 수퍼마켓에 들어갔더니 온갖 종류의 술이 철창 속에 굳게 갇혀 있는 것 아닌가. 놀란 토끼 눈으로 점원에게 물었더니 노르웨이에서는 8시 이후에는 술 판매를 금지한다고 한다. 24시간 언제든 술을 살 수 있는 한국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참으로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다.

부부 is 가끔은 상대의 말도 안 되는 허풍에 더 오버하며 장단 맞출 줄 알아야 한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아내 아임(I’m)과 완전 소심하고 꼼꼼한 남편 이미리(2㎜)씨. 너무 다른 성격의 서른 셋, 서른 네 살 부부가 연재하는 ‘좌충우돌 부부 유럽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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