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아버지, 누구인가?] 해외 지도자의 아버지들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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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부시 대통령 부자와 클린턴 전 대통령(맨 왼쪽).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좋은 아버지’를 가진 사람은 아마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일 것이다. 1900년대 초 재선 대통령을 지낸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헌신적으로 돌봤고, 평생 아들의 머릿속에 정신적 지주로 남았다.

미 부시 대통령의 별명은 ‘파파보이’

병약한 루스벨트는 태어날 때부터 천식이 워낙 심해 밤마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헥헥거렸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아들을 품에 안은 채 4륜마차를 몰고 뉴욕의 밤거리를 질주했다.

인적이 드문 밤거리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면 아들의 발작이 멈추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버지는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도 아들의 기침소리가 조금이라도 들리면 벌떡 일어나 가슴을 쓸어내려 주었다. 아버지가 가슴을 너무 세게 쓸어내려 루스벨트가 피를 토한 적도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뜨거운 부정(父情)과 함께 끊임없이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주었다. 열한 살 때는 아들에게 “세상에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없단다. 너는 다 좋은데 몸이 약해 탈이구나.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운동하면 튼튼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때부터 루스벨트는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한 끝에 천식도 사라지고 최고 명문 하버드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불행히 루스벨트의 아버지는 아들이 대학 2학년 때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 아들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훗날 루스벨트 대통령은 고민이나 슬픔이 생길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은 적이 없어. 아버지라면 이럴 때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하고 생각하면 결정이 쉬웠거든.”

루스벨트에게 아버지는 생명의 은인이요, 인생의 길잡이이자 영원한 등불이었다. 최근 새삼 세계적으로 ‘아버지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다. 초강대국 미국을 이끌어갈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친아버지가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흑인인 데다 일찌감치 가정을 버리고 제 갈 길을 떠나버린 풍운아였으며, 양아버지는 인도네시아 출신의 무슬림이라는 점에서 미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다.

오바마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더욱 노력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이는 오바마의 가슴속에 아버지의 존재를 은폐하고 싶은 ‘아버지 콤플렉스’와 함께 아버지에게 보란 듯이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보상심리가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나쁜 아버지’가 자기발전의 촉진제로 작용한 셈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 ‘나쁜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강인한 인내심과 함께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고야 말겠다는 ‘빅맨 콤플렉스(bigman complex)’를 갖고 앞만 보며 달려갔을 가능성이 높다.

어린 클린턴은 알코올 중독자인 의붓 아버지의 구박을 받으며 성장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못지않게 ‘좋은 아버지’의 덕을 톡톡히 본 사람은 아마 미국의 6대 대통령을 지낸 존 퀸스 애덤스 대통령일 듯싶다. 그는 아버지의 후광이 없었다면 대통령이 되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이름이 똑같은 그의 아버지는 바로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다. 엄격하고 교육열이 높았던 대통령 아버지는 아들의 가정교사 노릇을 자청하며 대학입시 준비를 시켰고, 영향력을 발휘해 하버드대에 입학시켰다.

이후 아들이 변호사로 개업하고 주의원으로 당선되는 데도 아버지의 도움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아버지는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어린 아들에게 자긍심과 함께 권력의 노하우를 전수해주었고, 마침내 30여 년 후 아버지의 대업을 이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로부터 176년이 지나서야 부자(父子) 대통령이 다시 탄생했는데, 부시 가문이 바로 그들이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재선 가도에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패배했으나 아들 부시 대통령을 통해 보기 좋게 설욕했다. 아들 부시는 지난 10월6일 시사회를 가진 올리버 스톤 감독의 전기영화 에서 ‘파파보이’로 묘사될 만큼 아버지 부시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둘 사이가 좋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대통령이라고 해서 아들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아들들이 자살·마약복용·비리연루·구속 등 불행한 삶을 살았듯 미국 대통령의 아들들도 순탄치 못한 생을 살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대통령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아들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불행한 확률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아마 ‘위대한 아버지’의 명성 속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갔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그 짐에 짓눌려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과 같은 대통령 아버지의 후계자로서 뭔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린 나머지 무모한 모험을 자초하거나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예컨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들은 다섯 번이나 결혼한 끝에 뉴욕 명사록에서 제외되는 불명예를 겪었다.

9대 윌리엄 해리슨 대통령의 맏아들은 횡령죄로 기소돼 그 와중에 34세의 나이로 죽었고, 존슨 대통령의 아들은 35세에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았다. 케네디 대통령의 촉망받던 아들도 38세의 젊은 나이에 그의 자가용 비행기가 대서양에 추락함으로써 저세상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부시 대통령도 한때 알코올중독과 싸웠던 적이 있다.

글■최 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cj02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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