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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보도 요청 효과 작아 보도 전에 선제 대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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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금융위기 이후 외국 주요 언론에 한국의 경제 상황에 대한 부정적 보도가 잇따르면서 한국의 위기설이 실제보다 더욱 증폭됐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뒤늦게 해외홍보팀 구성 추진 계획을 밝히는 등 대책에 나섰지만, 그동안 위기 시 국가 홍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다.

미국의 PR(홍보) 전문회사인 포터노밸리의 게리 스톡먼(47·사진) 최고경영자(CEO)는 “정정보도 요청은 매우 효과가 미약하다”며 “보도 전에 선제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터노벨리는 정책과 공익성 사업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사회 마케팅(Social Marketing), 그리고 위기 관리 PR에 특히 강한 회사다. 한국 등 60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30일 미국 뉴욕 본사에 있는 스톡먼과 긴급 통화해 조언을 들었다.

-왜 신흥경제국 중 한국이 유달리 부정적 보도의 타깃이 되고 있다고 보나.

“한국만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닌데, 외신 기자들과 한국인들이 이를 매우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헝가리·브라질 등 다른 나라도 모두 어렵지만 한국은 경제 규모가 세계 13번째로 크기 때문에 외신들의 날카로운 분석과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한국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경험했다. 그래서 외신 기자들도 상황보다 사태를 심각하게 해석해 보도하는 것 같다.”

-한승수 한국 총리가 최근 한국 경제 상황을 홍보하고 조율하는 통합 해외홍보팀을 만들겠다고 밝혔는데, 정부의 효율적인 위기 관리 홍보 방식은.

“우리는 위기 관리 홍보를 할 때 항상 통합적인 접근을 해야 하며, 각기 다른 부처의 이견을 조율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금융·행정·법률 등 여러 전문가 집단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따라서 통합된 홍보팀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해왔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위기의 정점에서 갑자기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초점이 ‘무엇’을 전달할지에 맞춰지지 않고,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맞춰져 버리기 때문이다. 큰 행동 방식을 바꾸기보다는 통합되고 조율된 커뮤니케이션 대응책을 내놓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한국에 당장 필요한 조언을 몇 가지 한다면.

“위기 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선 선제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온라인 실시간 모니터링과 대응 체제를 갖춰야 한다. 온라인에 뜨는 한국 관련 소문에 즉시 대응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비슷한 상황에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아이슬란드에 구제금융을 지원한다는 뉴스가 나오면 이것이 한국 관련 보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해 미리 대응하는 식이다.”

-최고지도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지금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다. 이럴수록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 수습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전례가 없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지나치게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일은 위험하다. 정부가 내놓은 전망이 실현되지 않으면 또 다른 신뢰의 위기를 낳기 때문이다. 어떤 조치를 내놓을 경우 이런 조치들이 어떤 방면에 도움을 줄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히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그동안 한국 정부의 국가 홍보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홍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뱅크 오프 굿윌(Bank of Good Will·선의의 은행)’이다. 한 기관, 회사 또는 나라가 그동안 장기적으로 쌓은 ‘꾸준한 선의’가 위기 때의 홍보에 매우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평판은 시간이 흐를수록 쌓인다. 한국은 97년 외환위기를 겪고 난 뒤 ‘선의의 은행’에 선의를 많이 못 쌓았다. 삼성이나 현대·LG 등 개별 기업의 이미지는 매우 좋아졌지만 이것이 코리아 국가 브랜드로 연결되지 못했다. 심각한 순간이 지나면 여러 기업과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브랜드 코리아’ 프로젝트를 가동해 볼 만하다. 브랜드 코리아에는 한국 정 부는 물론 기업, 교육·문화기관이 다양하게 참여해 한국의 경제 현실뿐만 아니라 문화와 역사도 함께 알려야 한다.”

-심각한 순간이 지나가는 때를 언제라고 봐야 하나.

“신용 시장이나 환율이 약간 안정을 찾을 때,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한 외신의 부정적인 보도가 다소 누그러질 때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위기에서 효과적인 국가 홍보로 위기를 탈피한 다른 나라의 과거 사례는.

“지금의 경제 상황이 워낙 전례가 없고, 규모도 커 다른 상황의 위기 대응 방식과 비교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이 이 난관을 잘 뚫고 나가 ‘선의의 은행’에 신뢰와 선의를 많이 쌓을 경우 모범적인 홍보 사례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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