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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타이어서 기름 펑펑 쏟아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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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폐타이어에서 뽑아 낸 기름을 비커에 따르고 있는 전영민 박사. 이 설비는 기름 추출과 정제까지 하나의 플랜트로 해결할 수 있고, 공장 가동 연료도 폐타이어 분해 부산물로 자급자족할 수 있다. [조문규 기자]

 28일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양노공단의 한 공장 마당. ㈜ACE가 폐타이어에서 기름을 뽑기 위해 개발한 ‘타이어시스(TireSys)’라는 시범 플랜트를 가동한 지 두 시간 남짓 되자 시커먼 기름이 뽑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PC 모니터의 플랜트 가동 상황판에는 기름 추출 양을 나타내는 실선 그래프가 가파른 경사를 그리며 올라가기 시작했고, 시범 플랜트의 작은 투명 관에는 기름이 저장탱크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한번 기름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그 양은 30~40분 만에 50㎏에 육박했다. 타이어시스는 하루 1t 처리 용량으로 소형 시범 플랜트였다. 이날은 타이어시스 준공과 가동을 참관하기 위해 화공 전문가 20여 명도 왔다. 시스템 가동을 지켜보던 성균관대 화공과 윤기준 교수, 한국화학연구원 조광연·박노상·이정민 박사 등의 입에서는 탄성이 나왔다. 이들은 “전 세계의 골칫거리인 폐타이어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대전 KAIST 벤처동에 입주해 있는 ㈜ACE가 폐타이어에서 기름을 추출할 수 있는 획기적인 공정을 개발했다고 발표한 것은 2006년 말. 폐타이어에서 기름을 뽑을 때 폭발 위험이 없고, 공장을 돌리는 에너지도 폐타이어에서 나오는 검댕과 가연성 가스로 해결하며, 폐타이어 무게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양의 기름도 뽑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개발해 내지 못한 공정으로 각계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설계도면과 특허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실제 플랜트는 없었다.<본지 2006년 11월 17일자 27면>

그 플랜트가 약 2년 만에 개발돼 이날 기름을 뽑아낸 것이다. 먼저 플랜트에 집어넣을 폐타이어 양을 저울로 달았다. 그래야 기름 추출 효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폐타이어 13개의 무게는 115㎏이었다. 폐타이어를 통째로 화학반응로에 수작업으로 집어 넣어 밀봉했다. 가동 버튼을 누르자 전 공정이 자동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공정의 각 부문에는 온도센서·압력센서 등이 내장돼 있어 PC 모니터에서 가동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플랜트 자동 가동과 조종 소프트웨어도 ACE가 개발한 것으로 한국전력 발전소 등에 설치한 것을 개조해 사용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플랜트 가동 중 화학반응로의 압력을 나타내는 PC모니터의 그래프가 갑자기 아래로 꺾였다. 공정 개발자인 ACE 전영민 박사는 “맨 밑바닥의 타이어가 분해돼 주저앉아 그런 그래프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자동 조종 소프트웨어는 이처럼 시스템 전 과정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할 수 있었다.

폐타이어에서 뽑은 기름의 비중은 0.8~0.9로 시판 경유와 비슷하다. 타이어시스에는 기름 추출 공정뿐 아니라 정제 공정까지 함께 탑재돼 있다. 추출 기름을 걸러 휘발유와 경유 등으로 분류까지 한다. 이날은 플랜트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미리 가동하면서 뽑은 기름도 전시됐다. 정제하지 않은 기름은 시커멓고, 정제한 것은 휘발유 그 자체였다.

◆경제성과 안전성 탁월=타이어시스의 기름 추출 효율은 45~48%다. 폐타이어 1㎏을 처리하면 450~480g의 기름, 고철 100g, 검댕 250~300g, 가연성 가스 150g을 회수할 수 있다. 타이어 제조 때 섞는 검댕과 가연성 가스는 공장 가동 연료로 재사용하고, 고철은 별도로 판다. 지금까지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폐타이어 기름 추출 플랜트들이 실패한 것은 검댕을 별도로 모으고, 추출한 기름을 공장 가동 연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쌓이는 검댕을 특수 폐기물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고, 남는 기름이 적어 경제성이 떨어지게 했다. 일부 플랜트는 폐타이어를 직접 가열해 공장이 폭발하기도 했다. 또 폐타이어를 잘게 썰어 화학반응로에 집어 넣는 전처리 과정을 거쳐야 해 추가 비용도 들었다.

전 박사는 “기존 플랜트의 단점을 모두 해결했다”며 “하루 처리 용량을 10~100t 등으로 자유롭게 늘릴 수 있고, 앞으로 폐타이어 투입에서부터 기름·철심 회수 등을 모두 전자동으로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가동한 시범 플랜트가 순수하게 차지한 면적은 2.5mX6.5m(16.25㎡, 약 5평)에 불과했다. 10t 처리 용량으로 플랜트를 키워도 10여 평의 면적(창고와 폐타이어 야적 면적 제외)과 약 25억원이면 공장을 세울 수 있다고 전 박사는 설명했다. 공정은 국내·국제 특허로 출원돼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박노상 박사는 “하루에도 전 세계에서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폐타이어를 처리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기름도 뽑을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이 한국에서 처음 선보였다”고 말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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