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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홀릭 기자의 안성 문화기행 ③ - 미리내성지

중앙일보

입력

안성은 종교적 의미를 간직한 고장이기도 하다. 가톨릭 순례자들에게는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묘가 있는 미리내성지, 병인박해 때 순교지인 죽산성지(이진터성지), 안성포도의 시원지이자 경기도기념물로 지정된 구포동성당 등 도심 곳곳에 천주교 사적지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근대 태동기의 격변을 고스란히 감싸 안은 곳이기도 하다.

미리내 성지 입구에 세워진 입석


그 중에서도 먼저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의 쌍령산 골 깊은 곳에 자리한 ‘미리내’를 둘러보자. 구한말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 때 경기도와 충청도의 천주교 신자들이 모진 탄압을 피해 숨어든 곳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밭을 일구고 그릇을 구워 팔며 살았던 곳이다. 그때 그들이 피워낸 삶의 불빛들이 밤이면 달빛 아래 은하수처럼 보여 ‘미리내(은하수의 우리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지금까지도 주민의 95%가 천주교 신자인 이 조용한 마을의 뒤쪽, 쌍령산 자락에는 김대건 신부의 묘지와 경당이 있고, 한국 천주교 103위 시성 기념 성전, 100년의 역사를 가진 미리내 성요셉성당 등 천주교의 역사를 찾아볼 수 있는 미리내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순교자 103위의 시성을 기념하는 성당 내부


성지 입구에 들어서면 주차장 한가운데에 '미리내성지'라고 음각된 큰 입석(立石)이 순례자들을 반긴다. 미리내성지의 순례길은 이 입석을 중심으로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입석 위쪽으로 올라가는 첫 번째 길은 김대건 신부의 자취를 찾아 오르는 길이라 할 수 있다. 묵주기도의 길과 야외 십자가의 길이라 불리는 긴 산책로를 따라 기도하듯 걷다 보면 웅장한 규모의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기념 성전’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이 성당은 1984년에 시성된 103위 순교 성인을 기념하기 위해 1991년에 지어졌다. 성당의 제대에는 김대건 신부의 종아리뼈가 모셔져 있고, 2층에는 천주교 박해 시 천주교인들이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문당하던 형구 모형과 순교 장면이 전시돼 있다. 독특한 외부 모습과는 달리 전형적인 고딕양식을 보여주는 성당 내부는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게 한다.

103위 시성기념 성전을 지나 더 깊숙이 들어가면 길 끝자락에 자그마한 경당이 하나 보이는데 이 경당 안에는 김대건 신부의 발뼈 조각이 관 조각과 함께 보관돼 있다. 그리고 경당 바로 앞에는 김대선 신부의 묘소가 다른 세 신부의 묘소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이곳 경당까지 오가는 길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종교인이 아니어도 산책 삼아 거닐면 경건한 마음이 샘솟는다.

성지 입석에서 오른쪽 언덕길로 오르는 또 다른 길은 미리내 성요셉성당과 통고의 집, 무명 순교자와 성직자 묘지와 겟세마니 동산으로 이어진다. 언덕길 입구에 자리한 성요셉성당은 1906년 강도영 신부와 신자들이 주변에서 주어온 돌로 지었다. 이곳에는 김대건 신부의 하악골(아래턱 뼈)이 ‘제대’ 앞에 모셔져 있다. 100년 역사를 가진 미리내 성요셉성당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이름 모를 순교자의 묘

순례자의 집에서 시작된 겟세마니 동산은 작은 언덕 중턱에 자리한 무명 순교자와 성직자 묘지를 지나 기도하는 예수의 상이 나오는 언덕까지 이어진다. 동산길은 길을 따라 예수의 일생을 양각해 놓은 대리석들이 놓여 있다. 길 양쪽으로는 시원한 사철수들이 높게 뻗어 있다.

겟세마니 동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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