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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한국기원 새 회관 건립 암초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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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왕십리에 있는 한국기원 회관 전경. 김우중 전 대우회장이 총재로 있을 때 희사한 5층건물이다. [한국기원 제공]

축구인들에게 한때 잔디구장이 소원이었던 것처럼 바둑인들에겐 품격있는 대국장이 소원이다. 대규모 아마대회나 국제대회를 열 수 있는 넓은 대국장과 결승전이나 빅 이벤트에 걸맞은 격조높은 대국실을 갖고 싶어한다. TV 스튜디오와 중계 시스템, 연구실, 사무실 등이 잘 갖춰진 그런 '한국기원'을 갖고 싶어한다. 세계 최강국의 위상에 걸맞고 1000만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회관 건립'은 그래서 오래 전부터 한국기원의 숙원사업이었다.

경기도 고양시가 일산의 새로 조성되는 지역에 3000평의 땅을 분양해주겠다고 나선 것은 지난해 일이다. 프로기사들은 이 소식에 들떴다. 그러나 고양시가 문화단체의 유치를 위해 200억원도 넘는 땅값을 대폭 깎아줄 뜻을 비쳤음에도 이를 법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첩첩산중의 난관이 있었다. 서울을 떠난다는 데 대한 한국기원 내부의 찬반도 팽팽했다.

프로기사들의 염원과 진통을 보다 못한 한국기원 허동수(LG칼텍스정유 회장)이사장이 서울 서초동의 LG 소유 1100평 땅을 한국기원에 적당한 값에 내줄 뜻을 밝히고 그곳에 한국기원을 세울 수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했다. 예술의전당 근처의 이곳은 오래 전에 주유소로 허가가 난 곳이지만 우면산 자락과 맞닿아 있어 시민 정서를 고려한 LG가 스스로 주유소 건립을 포기한 땅이었다. 한국기원으로선 최적의 땅이다.

프로기사들은 이번에야말로 소원이 이뤄지는구나 싶었다. 부푼 꿈을 안고 서초구청을 찾았다. 그러나 또다시 강력한 복병이 나타났다. 서초구청이 '우면산 트러스트 운동'을 펼쳐 이미 1만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하고 운동자금도 10억원이나 모인 상태였다.

이 땅은 그린벨트도 아닌 명백한 사유재산임에 틀림없지만 우면산을 지키기 위해 건물 건립을 허가해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바둑이 환경운동과 맞닥뜨린 것이다.

한국기원은 주장한다. 바둑은 조용하며 무공해다. 예도의 품격을 갖춘 고도의 두뇌 스포츠며 우리나라가 세계 1등을 하는 종목이기도 하다. 한국기원이 이곳에 환경친화적인 아름다운 건물을 짓는다면 그것은 서초구의 자랑이 될지언정 어찌 환경을 훼손할 리 있겠는가.

한국기원은 1966년 관철동에 5층 건물의 첫 회관을 지었으나 너무 좁아 왕십리의 홍익동으로 옮겼다. 김우중씨가 총재 시절 희사한 5층 건물이었다. 하지만 이곳도 너무 비좁고 누추해 국제대회는 으레 호텔에서 치르고 아마대회는 체육관을 빌리는 실정이다.

미국대사관은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땅을 받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힘 없는 한국기원은 모처럼의 기회가 또다시 가로막히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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