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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日章旗는 워싱턴을 누비는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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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워싱턴=김용일 특파원]일본 미쓰비시사의 워싱턴 주재원인 구나다 고우치(41)의 일과는 하루 스케줄을 짜는 것으로 시작한다.점심약속은 물론 대부분의 낮시간과 저녁이 세미나 참석.방문및 면담등으로 꽉 차있다.지난 10월의.행적'을 보 면 미국인사들과의 점심약속이 18회,저녁 12회,세미나참석 8회,지방출장 2박3일등이다.만난 상대는 모두 60명이 넘는다.
자신의 주된 일과가.사람만나는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워싱턴의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자는 것이 주업무”라는 설명이다.정부나 의회인사.로비스트,각종 협회 종사자.학자등과 긴밀히 만나면서 얘기를 듣고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쌓아간다 .
취합한 정보를 월 2회씩 도쿄(東京) 본사에 보낸다.
급한 것은 매일 저녁 집에서 전자메일로 약식보고도 한다.그가워싱턴에서 정기적으로 만나는 미국측 정.관계및 업계인사는 30명 가까이 된다.미쓰비시사가 20년 이상 공들여 구축해 온 이같은.워싱턴 인맥'은 바로 회사의 눈에 안보이는 자산이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핵발전소의 이상 여부나 월드뱅크가 나이지리아에 대규모 수력발전소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는등의 정보를 도쿄에서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들의 덕이다.
워싱턴 일원에는 이들같은 일본주재원들이 적지않다.진출해있는 기업이 1백97개,연구소 9개,금융.법률.기타 26개등 모두 2백43개소 7백여명이 넘는 주재원들이 워싱턴 곳곳을 두드리며다니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워싱턴 지역에 한국 기업들이 한때나마모습을 드러냈던 것은 88년 무렵이다.
반도체.컬러 TV등 한.미간 통상마찰이 한창 격화됐을 때 일부 대기업들이 사무소를 설치한 바 있다.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해 지난 9월말 현대자동차사무소가 문을 닫은 것을 끝으로 삼성.포항제철.KAL등만이 남아 있으며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일 뿐 일본기업들 같은 활동은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당장 눈앞의 장사에 수지맞추는 일이 발등의 불인데 무슨 워싱턴 로비냐는 것이 한국기업들의 반응이다.한국기업들이 워싱턴을 떠나는 것에 대해 주미(駐美)대사관의 오영호 상무관은 “미국사회와 제도의 깊은 면을 모르는데 따른 판단”이라고 평가한다.
미 정부의 핵심정책은 사실상 의회에서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러한 의회는 또 누가 움직이는가.업계와 각종협회등 이익단체.의회주변 인물.로비스트등과 같은.워싱턴 인맥'이 바로 보이지 않는 배후의 손들이다.따라서 이들을 대상으 로“평상시에꾸준히.풀뿌리'로비망을 확보해놔야 필요할 때 한국정부와 기업들의 이익이 대변될 수 있다”는 것이 오상무관의 설명이다.주재기업이나 주재원수의 다과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기업의 전략이나입장,여건에 따라 워싱턴에 대한 인 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현실적으로 그 차이는 엄청나다.워싱턴에 주재중인 일본자동차협회 한 관계자의 말대로“워싱턴에서 버텨내기 위해서는 주재원 1인당 각계에 걸쳐 최소 20명 정도의인력관리가 기본”이라면 산술적으로 따져 워싱턴에서 관리되고 있는.일본 인맥'이 1만4천명은 되는 셈이다.이같은 규모의 인맥을 가동시키는 나라와 우리를 비교해볼 때 어느 쪽의.눈과 귀'가 밝을 것이냐는 더 물을 필요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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