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이제 종교다 잠재의식의 환상인가 구세주의 강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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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1월17일 오전 10시.서울 장안평의 한 무용학원 연습실에 3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대학교 1년부터 할아버지까지,동네이발사부터 서울대법대 출신까지 다양한 군상들이 마루에 원을 그리고 앉았다.물론 무용을 배우러 온게 아니다.그들은 명상을 끝낸 뒤 편한 자세로 둘러앉아 대화시간을 갖고 흩어졌다.멀리서 보면 단전호흡이나 명상수련원을 연상시킬 만한 풍경이었다. 같은 시간.대전에서는 3백여명이 참석한 증산도 주최의 세미나가 열렸다.증산사상연구회가 정례적인 논문발표회를 ‘개벽대회’로 개명하고 연 첫 행사였다. 한날 한시에 열린 이 두 모임.그 사이를 이어주는 끈은 신도, 명상도, 수련도 아닌 미확인 비행물체(UFO)였다.대전에서 열린 세미나의 주제는 ‘UFO와 우주문명’.증산 사상과 우주문명에 관한 메시지의 접목을 탐색하는 자리다.장안동의 모임은 우주인의 메시지를 전하는 운동을 벌여온 ‘라엘리안 무브먼트’한국지부의 정기집회. 이 두 모임은 막 불기 시작한 한국의 UFO 열풍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관계기사 38면>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1백40여건에 이르는 목격사례가 보고됐고 그중 15건정도가 사진으로 촬영됐다.그럼에도 여기에 대한 관심은 일시적인 호기심에 그쳤다.그러나 지난해 9월 모일간지 사진기자가 UFO를 선명하게 포착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UFO에 대한 관심에 불이 붙었다.지금까지 20여종이 출간된 UFO 관련서적의 절반이상이 올해 출간됐고 패닉의 2집 앨범 ‘밑’에는 타이틀곡으로 ‘UFO’가 떴다.또 다큐멘터리 채널인 센추리TV는 올해 9월말 5부작 비디오 ‘UFO 그 숨겨진 실체’를 내놓았다.이런 분위기에 힘입은 이벤트회사 캘리포니아 이벤트 그룹(CEG)은 오는 12월21일부터 30억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외계문명전을 서울에서 연다.CEG는 모두 30만명을 동원해야 본전을 찾는 이 행사의 성공을 낙관하고 있다. 이처럼 UFO에 대한 관심은 최근들어 폭발적인 양적 확산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관심의 질이다.과거의 SF적 호기심이 과학적 관심으로 깊어지고 일부에서는 종교적 믿음으로까지 심화돼가는게 요즘의 추세다. 라엘리안 무브먼트 회원들의 경우가 그 대표적 사례다.이 운동은 UFO의 존재를 믿는 것은 물론 우주인의 메시지를 수용해 지구를 구원해야 한다는 종교적 색채가 짙은 운동이다.창시자인 프랑스의 클로드 브리롱 라엘은 73년 우주인을 만나 인류의 기원과 미래에 관한 진실을 들었고 그들의 혹성까지 다녀왔다는 인물.그가 듣고 본 바를 요약하면 인류는 2만5천년 앞선 문명을 가진 혹성 과학자들이 창조해냈다는 것.그 혹성에서는 전쟁등 모든 종류의 폭력이 사라졌으며 이들의 앞선 과학을 지구에 전해주고 싶어한다는 것.그러나 현재의 지구는 반목과 폭력이 난무해 기술을 전해줄수 없기 때문에 우주인의 메시지를 지구인에게 전해 평화가 올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올 여름 선보인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옥상에 올라가 침공한 우주인을 열렬히 환영하던 사람들이 바로 라엘리안들이다. 현재 이 운동의 회원은 전세계적으로 6만여명.한국에는 83년 10여명 안팎이던 것이 지금은 1천여명으로 늘어났다.전혀 대외홍보를 하지 않고 ‘진실의서’‘천재정치’등 출판물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만 가입시킨 점을 고려하면 급신장한 셈이다.이 회원들은 70%이상이 대졸자로 17일 집회에서도 명문대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수 있었다.집회가 끝나고 가진 집단 인터뷰 자리에서 이들은 “이 세상엔 신도, 영혼도 없으며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미래를 좌우하기 때문에 외계로부터 그 기술을 전수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그룹의 리더격인 최사규씨는 “라엘이 외계에 다녀온 부분이 가장 황당하게 받아들여지는데 회원중에서도 그 사실 자체는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면서 “그러나 대부분은 비폭력과 평화를 지향하고 과학에 의한 낙관론을 펼치는 이 운동의 취지에 공감해 찾아오는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증산도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상환(경북대 경영학과)교수도 외계의 존재와 그 문명의 절대적 우월성을 확신하는 인물이다.李교수는 ‘UFO와 열린 우주’란 논문을 통해 “증산도의 경전인 ‘도전’에 수록된 예언과 사상이 우주인이 전하는 메시지와 너무 일치한다”고 주장한다.예컨대 분열과 반목으로 경쟁적으로 발전하는 선천(先天)의 문명이 개벽을 맞으면서 조화와 통일의 후천선경(後天仙境)으로 이행한다는 증산사상은 우주인이 전하는 미래의 우주대통합 문명과 그 성격이 같다는 것이다. 증산도가 외계문명의 존재를 사상에 끌어들이는 것은 李교수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다.증산도측은 “올해초부터 증산연구회 회원들 사이에 외계문명이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고 밝힌다.

서구의 종교학자들은 과학의 시대에 교리에 과학성을 부여하려는 방편으로 UFO가 인용돼온 경향을 지적하고 있다.증산도가 ‘천상문명’의 증거로 우주문명의 실체를 탐색하는 것과 반대로 라엘리안 무브먼트는 우주문명의 실존을 증명하기 위해 우주인의 메시지를 성경 구절과 대비시키며 설명하고 있다.학자들은 과학과 종교가 서로 파고드는 이런 현상이 UFO에 대한 과학적 규명이 이뤄지기까지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현대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고도의 과학은 종교의 발생요건인 공포와 경외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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