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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 탐방기 ④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광주에 서다

중앙일보

입력

비엔날레 네 번째 코스는 광주극장이다. 비엔날레 하면 영상예술보다는 색채와 조형예술부터 떠오르는 게 보통이니 극장소개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을 강추 코스다.

광주극장은 광주의 근현대사를 잇는 도심의 예술전용극장이다. 위치는 충장로 5가, 비엔날레 전용버스를 타고 움직이면 이십 여분 안쪽으로 도착한다. 광주극장은 일제 때 문을 열어 약 70여 년의 세월을 광주시민과 함께 해왔다. 이곳에 들어서면 극장 곳곳에 놓인 오래된 소품들로 인해 그간의 세월들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다. 기술이 발달되기 전에 사용됐던 영사기에서부터 옛사람들의 손때가 묻어있는 각종 영화관련 서적, 탁자며 의자 등 배열된 소품 하나하나가 골동품처럼 깊은 향기를 머금고 있다. 한때는 이곳이 지역민들의 커다란 문화공간이자 유원지였겠지만 이제는 예술영화나 독립영화와 같은 비상업적인 작품들이 주로 상영되고 있다.

자본주의 속에서 비상업적인 작품이 상영되는 공간이 살아남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런 점에서 광주극장은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광주가 ‘문화수도’로 거듭나면서 이곳 광주극장 또한 예술적인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첨단시대 속에서 여전히 고풍미를 간직하게 된 것을 자축이라도 하려는 듯 극장의 외부에는 손간판이 옛날 모습 그대로 전시돼 있다. 손간판에서는 촌스럽고 낡은 분위기가 흐르지만 향수와 낭만이 더 진하게 묻어나서 한참 바라보게 된다.

이 분위기는 내부로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들은 어머니 냄새와도 같은 잔잔한 공기에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시골에 대한 향수가 없는 젊은이들일지라도 그 낡고 단조로운 분위기에 취해 전에 없이 더욱 차분해지곤 한다. 잔잔한 가운데 한 가지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극장 내부에 아직 남아 있는 ‘임검석’이다. 임검석이란 일제 때 그들이 한국 영화에 대한 검열을 실시하기 위해 마련한 좌석이다. 당시 극장에서는 영화와 연극, 극단 등의 공연이 활발히 이뤄졌다. 때로는 일제를 향한 반발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여 고초를 겪거나 은밀하고 은근한 방법으로 일본을 조롱하며 마음으로만 통쾌함을 나눠가졌던 그 시절의 ‘딴따라’ 예인들, 그들의 겪었을 성공과 실패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비엔날레가 다 끝나기 전에 광주극장에서 눈 여겨 봐야 할 영화들이 있다. 먼저 소개할 영화는 독일 영화계의 거장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이다.
이 작품은 감독의 서거 25주년을 기념하여 전 세계에서 단 1본밖에 존재하지 않는 필름을 공수해온 것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귀한 기회이니만큼 놓치지 말자. 영화는 작가 알프레드 되블린의 동명소설을 토대로 만든 것인데 아쉽게도 상영시간은 모두 마감되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극장에 들른다면 포스터나 영화감상평 등 그 흔적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으니 아쉽게나마 마음을 달래보기 바란다.

문외한이라도 이번 기회를 통해 영화감독 파스빈더에 대해 조금 공부해두면 독일영화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상영됐던 파스빈더의 작품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은 1929년에 발표된 되블린의 대표작으로 이는 되블린을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준 명작이다. 줄거리는 선량하고 유약한 어느 소시민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남다르게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니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작품 속 주인공의 이름은 비버코프다. 그는 몇 년 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깨끗하게 살기로 굳게 다짐한다. 하지만 보잘 것 없는 밑바닥에서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베를린 광장에서 신문을 팔며 어떻게든 살아보려 노력했지만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설상가상으로 사랑마저 잃게 된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누명까지 쓰게 되어 다시 징역 십 년을 받게 된다. 결국 주인공은 자꾸만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자신의 생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신병원으로 가게 되는데 줄거리 말미에서는 다행히도 누명을 벗게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소설은 한 개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지만 사실상 주인공은 당시의 독일사회를 대변한다. 슬픔과 회한뿐이었던 당시 독일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비장한 슬픔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조심스럽지만 꿈꾸어도 좋을 어떤 희망도 안겨주었다. 독일인들에게 파스빈더의 작품은 영화라기보다는 일종의 메시지이자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지금도 전 세계를 돌며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다. 파스빈더의 작품은 아직까지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 한국인의 정서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상영시간은 놓쳤지만 극장에 전시돼 있는 그의 포스터와 컬렉션이 궁금하다면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

비엔날레 기간 동안 반드시 주목해야 할 영화감독이 한 명 더 있다. 그의 이름은 세르지오 레오네. <황야의 무법자>의 그 레오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바로 그 세레지오 레오네, 맞다.
그는 이탈리아 영화감독으로 1929년 출생해서 예순에 사망했다. 유작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수년에 걸쳐 만들어진 영화인데 원래는 네 시간 정도의 분량이었으나 흥행성 때문에 두 시간 이십 여분으로 편집했다고 한다. 세간의 평가에 시달리다가 최근 들어서 전문가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는 세르지오의 유작이 궁금하다면 11월2월 이내로 광주 극장을 찾으면 된다. 광주극장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상영시간이 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http://cafe.naver.com/cinemagwangju/ )

비엔날레 본관에서 의재미술관보다 광주극장을 먼저 들르고 싶다면 셔틀버스 방문경로를 잘 살펴보고 탑승하거나 도우미에게 미리 원하는 장소를 말해두면 된다. 셔틀버스 도우미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광주시민들이다.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도 무안할 일이 결코 없다. 동네주민처럼 맞아주기 때문이다.
여러 군데 분산된 비엔날레 진행 장소를 하루에 다 돌아보려면 무척 바쁘게 움직여야 하므로 적어도 하룻밤 정도는 묵어갈 생각을 해야 한다. 입장권은 처음에 1장만 구입하면 아무 때고 어느 전시관이라도 관람이 가능하다. 입장권은 대인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전시관에서 모두 구입 가능하며, 광주극장은 비엔날레 티켓 소지자에 한해서 비엔날레 작품으로 상영 중인 영화나 다른 영화들을 한 회당 천원 씩 할인해준다. 여건이 된다면 사나흘 여유를 두고 무등산이며 각종 미술관등 두루 둘러보길 권한다.

워크홀릭 담당기자 설은영 e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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