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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를움직이는사람들>38.동양화학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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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자네,경영이란 서두르지 말되 쉬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네.”지난 9월2일 동양화학그룹 신임회장 취임식에서 창업주 이회림(李會林.79)명예회장은 그의 장남인 이수영(李秀永.54)신임회장에게 경영대권을 물려주며 이같이 당부했다.
경기도포천의 그룹연수원 정문앞 화강암 표석에까지 새겨져 있는.서두르지 말되 쉬지도 말자'는 표어는 59년 동양화학 설립이후 40여년 가까이 임직원들의 좌우명이 됐다..마지막 송상(松商.개성상인)'.李명예회장을 부를 때 붙는 수식 어다.
李명예회장은 송도보통학교를 졸업한 31년 14세의 나이에 개성의 유명 잡화도매상이었던 손창선상점에 점원으로 취직,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당시 내로라하는 거물 상인들로부터 10여년간 혹독한 수업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는 자신의 약력에 항상 .개성 손창선상점점원'으로 시작하는 점원경력을 자랑스럽게 집어넣는다.
이때부터 시작된 李명예회장의 송상 정신은 .근검절약과 신용'. 지금도 세수할 때 비누를 쓰지 않을 정도다.때문에 동양화학직원들은 호.불황에 관계없이 사무실에서 이면지 사용은 필수고 사람이 없는 사무실에 불이라도 켜놓으면 李명예회장의 호통이 날아온다. 李명예회장은 해방이후 서울 종로 탑골공원 근처에서 포목점을 시작한 후 50년대 들어 무역회사.면방업체들을 잇따라 만들고 59년엔 지금은 모기업이 된 소다회공장 동양화학을 설립했다. 李명예회장은 이와 함께 .신념만 확고하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6.25때 그가 운영하던 무역회사의 원단을 몽땅 도둑맞자 혼자 자전거를 타고 사흘동안 서울시내를 샅샅이 뒤져 이를 거의 찾아낸 경험을 그 예로 들곤 한다. 동양화학그룹이 5,6공시절 정치자금파동에 말려들지 않은 것도 정경유착을 멀리한 개성상인의 전통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동양화학그룹은 현재 옥시.삼광유리등 20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한결같이 화학관련 사업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1조4천억원.
그들은 규모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지만 스스로 .한국의 듀폰'으로 여기는 자부심도 있다.
그러나 동양화학그룹에는 무기.정밀화학의 원자재만 취급해온 외길경영으로 세계적으로 이름날리는 제품들이 적지않다.표백제인 .
퍼카보나이트'는 단일공장 생산규모가 세계1위며 브라운관 유리와PC모니터등의 원료로 쓰이는 .탄산칼리'생산량은 세계2위,유리.제지등에 고루 사용되는 소다회는 세계 3위를 자랑한다.
이수영(李秀永)신임 그룹회장은 .세계일류'와 .소비자와의 친숙'을 강조한다.
李회장은 4년간의 미국 유학생활동안 부친이 “근검절약하라”며생활비를 넉넉하게 주지않아 돈을 벌기 위해 트럭운전까지 했다.
李회장은 .재벌 2세'라는 말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오너라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습니다.저를 전문경영인으로 불러주십시오.” 자신이 어느날 갑자기 발탁되거나 대권을 물려받은게 아니라 26세때 신입사원으로 출발해 30여년 가까이 단계를밟아 정상에 올랐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그는 출장때마다 노트북 컴퓨터를 갖고 다니며 직원들에게 전자우편으로 업무를 지시하거나 인터넷으로 직접 정보검색에 나서는등컴퓨터 실력도 수준급이다.
李회장은 빙상연맹회장직을 15년간 맡기도 했다.
동양화학그룹의 상층부 요직에는 李회장 가족들이 적잖이 포진하고 있다.李회장의 부친인 李명예회장은 경영권을 물려준 후에도 여전히 본사 사옥으로 출근,그룹안의 중요사항을 보고받는등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복영(福永.49.㈜유니드 사장),화영(和永.45.동양화학 수석부사장)씨등 李회장의 동생들도 그룹경영에 깊숙이 간여하고 있다. 명예회장의 동생인 ㈜유니온 회장 회삼(會森.76)씨도 .
창업동지'로 아직 일선에 있으며,회삼씨의 아들 건영(健永.52)씨는 ㈜유니온 사장을 맡고 있다.
그룹의 장기적 경영계획 수립은 20개 계열사 사장단이 참가해상.하반기에 한차례씩 열리는 .그룹경영보고회'에서 결정된다.
3일 이상 열리는 이 회의에서는 각 계열사의 현안과 해결방안등이 집중 논의된다.그러나 일상적 업무는 서울소공동 본사에서 회장실과 같은 층에 사무실이 있는 .18층 멤버'들이 결정한다. 李회장과 권석명(權奭明)동양화학사장,이화영(李和永)동양화학수석부사장등이 주요 멤버며 백우석(白禹錫)동양화학전무등 전무급본부장 4명이 배석해 실무현안을 설명한다.그룹기조실은 없다.
***경영진에 엔지니어 많아 경영진에는 주력업종 성격상 엔지니어 출신이 많다.전문경영인들중 權동양화학사장과 김용정(金容政) ㈜유니드회장은 그룹 창업초기부터 고락을 같이해온 대표적인 1세대 경영진이자 그룹원로들.
신중하고 소탈한 權사장과 치밀하고 이론에 밝은 편인 金회장은명예회장시절부터 그룹안에 큰 문제가 생길 때 가장 먼저 의논상대가 되는 핵심 경영진이다.
엄수명(嚴秀明)삼광유리공업 부회장과 유해준(柳海俊)이양화학사장은 그룹안의 대소사를 꿰고 있는 공채파의 대표주자들이다.
李회장 출신학교인 경기고나 연세대 출신 경영진도 많다.
박노신(朴魯信)동양실리콘사장과 고교후배인 신현우(申鉉宇) ㈜옥시사장이 경기고 동문.
.원,투,쓰리-' 동양화학그룹의 향후 목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2000년에 매출 10조원을 이루기 위해 세계 1,2,3위권안에 드는 제품만을 개발한다는 뜻.
동양화학그룹은 이에따라 앞으로 한계기업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정밀화학등 고부가가치 사업과 전자및 반도체 관련사업.방송업등 정보통신산업에 주력할 예정이다.

<홍병기 기자><다음은 한국유리그룹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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