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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가 치솟으면 □는 웃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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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엔화가 무섭게 치솟고 있다. 28일 일본은행(BOJ)의 시장 개입설이 돌면서 엔화 가치가 소폭 하락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강세다. 지난 주말엔 장중 달러-엔 환율이 90.93엔까지 낮아져 1995년 8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엔화 가치가 13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엔고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엔고(高)’는 증시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일부 기업은 엔고의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엔캐리 청산이 엔고 주범”=미국과 유럽 경제가 망가진 마당에 역시 믿을 곳은 일본 경제라는 믿음이 엔화 강세의 배경이다. 그러나 최근과 같은 급등에는 ‘엔캐리 트레이딩’ 자금의 급속한 청산이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하는 것이 적합하다. 엔캐리 트레이딩은 일본의 낮은 금리를 이용해 돈을 빌려 이를 다른 주식이나 외환시장에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2002년 이후 일본의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엔캐리 트레이딩 자금은 전 세계 시장으로 침투해 나갔다.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우는 데 이 돈이 한몫한 셈이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면서 해외에 투자됐던 엔캐리 자금이 급속히 일본으로 돌아가고 있다. 자산을 팔아 엔화로 바꾸니 엔화가 급등하는 것이다. 전날 선진 7개국(G7) 재무당국이 모여 엔화 급등을 잡겠다고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엔화 강세는 쉽게 꺾일 줄 모른다.

엔고는 우리 경제엔 부담이다. 국내 수출품의 핵심 부품 대부분은 일본에서 수입한다. 향후 대일 무역적자 확대에 따른 국제수지 악화가 우려된다. 엔화 대출을 받았던 중소기업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엔고 수혜주도 있다=그러나 엔고로 수혜를 보는 기업도 있다. 토러스투자증권은 이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먼저 원-엔 환율에 민감한 기업이다. 이들은 일본 기업과 수출 경쟁 관계에 있는 업체다. 삼성전기의 경우 엔고에 힘입어 내년 영업이익과 순이익 증가율은 각각 68%, 87%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으로 일본 소비의 수혜를 볼 수 있는 기업이다. 신도리코는 수출 비중이 72%(2007년 기준)이며, 대부분 일본 리코사로부터 제조자개발생산(ODM) 수주를 받아 납품하고 있다. 일본의 화폐 가치가 높아져 일본인 관광객 수요가 늘면 이들이 많이 찾는 호텔신라의 실적 개선도 기대된다. 실제로 한국의 일본인 입국자 수는 원-엔 환율과 같은 흐름을 보였다.

엔화 부채보다 엔화 자산이 많은 기업도 수혜가 예상된다. 코스닥 시가총액 3위 기업인 태웅은 엔화 순자산이 4억9700만 엔(2007년 말 기준)이다. 원화로 환산하면 지난해 말에 비해 가치가 37% 증가했다.

이원선 연구원은 “이는 이승엽 선수의 연봉이 가만히 앉아서 37% 오르는 것과 같은 효과”라며 “엔화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을 감안하면 엔고로 수혜를 볼 수 있는 이들 기업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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