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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정년퇴직자 곶감빼먹듯 퇴직금 야금야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당장 수입이 한 푼도 없는데 아직 대학생이 있으니 뭔가 새벌이를 시작해야지 이대로 있다간 얼마 안되는 퇴직금만 까먹게 됐습니다.』 지난 8월말 55세로 20년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정년퇴직한 안종길(安種吉)씨의 형편을 보면 퇴직 이후 생활대비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다.
감원 바람이 부는 요즘 한 회사에서 安씨처럼 정년퇴직을 맞이하는 것은 어찌 보면 축복받은 경우에 해당된다.자기 집을 마련한데다 자녀들도 장성했겠고 퇴직금도 받아뒀을 테니 노후를 그다지 어렵게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통념 때문이다 .
30대 후반~40대에 명예퇴직한 사람들에 비하면 정년퇴직자의형편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安씨의 말대로라면 결코 단정해서는 안될 것같다.실제로 정년퇴직자들의 경제 상태를 따져보면 반드시넉넉하지만은 못한게 현실이다.
삼성생명이 지난해 서울시내 남녀 직장인 1천3백16명을 대상으로 「퇴직후 관심과 대책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정년퇴직 후에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면 별도의 준비가 절실한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같은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安씨의 경우처럼 66.8%의 직장인들은 정년이후를 대비한 구체적인 경제적 대책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하고 있는 퇴직후 대책 방법으로▶43.2%가 노후연금보험에 가입해 있으며▶은행적금.신탁이 25.4%였고▶퇴직금은 불과 5.1%였다.
그런데 安씨는 퇴직금외엔 따로 모아놓은 것이 없는데다 1백30만원 정도이던 생활비는 퇴직후에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경.
조사비는 꼬박꼬박 챙기다보니 한달에 1백50만원 이상의 총생활비가 필요하다.
또 회사가 지급해주던 등록금 지원금마저 끊겨 지방대에 다니는차남(25)의 학자금과 생활비까지 더하면 월평균 2백만원이 꼬박 들어간다.현재 2천50만원정도 들어있는 자유저축예금에서 곶감 빼먹듯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막상 정년퇴직해보니 1억원의 퇴직금을 합쳐 금융자산은1억4천만원 정도밖에 안돼 일없이 원금만 까먹다 보면 몇년 안에 빈털터리가 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퇴직금은 가지고 있던 수익증권 계좌에 넣어뒀고 주식은 9백35만원어치 가량을 보유중이다.불입총액이 각각 2백24만원,5백60만원인 장수보험과 암보험등도 있지만 목돈이 되진 못한다.집이라야 30평형 연립주택이어서 1억원정도 밖에 안되고,10년전 상속받은 임야는 시가가 9천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安씨는 이제 두 달남짓한 휴식기간을 털고 일어나 나이에 관계없이 자신을 받아줄 곳이 있는지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고있다.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정년퇴직이 시작되는 연령인 55세를넘겨서도 일을 하고 있는 고령 취업자들(94년 기준)은 전체취업자 수의 14.9%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농사를 짓는 사람을제외하면 8.4%에 불과하다.그만큼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安씨는 재취업이 여의치 않을 경우 고향 서산에 도로변가든을 전세 내 불고기집이나 운영해볼까하는 생각도 있지만 실패가 우려돼 망설이고 있는 상태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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