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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문 부인상 조문 간 조윤형 … 불쑥 “형님, 요즘 별일 없으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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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0부 정상에 오르는 길은 험하고 위험하다. 7부 능선엔 발목을 잡는 세력이 없다.”

13대부터 내리 4선을 한 신경식(70·사진) 한나라당 전 의원. 그가 27일 이런 메시지의 자서전(『신경식 회고록-7부 능선엔 적이 없다』)을 냈다.

그는 현역 시절 온화한 성품의 정치인으로 알려졌었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편은 아니었지만 늘 주요한 자리에서 역할을 했다.

1970년대를 풍미한 정일권 전 국회의장과 인연을 맺은 것이나 김영삼(YS) 전 대통령,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 같이 전혀 다른 색채의 정치인들과도 호흡을 맞춘 게 대표적이다. 무려 다섯 차례나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정 의장과는 한 차례, YS와 이 총재와는 각각 두 차례였다.

그는 그 비결로 “항상 중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정상을 향해 무리하게 몸부림치지 않았고 나의 위치에서 그때그때 주어진 책무에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말했다. 다음은 자서전의 내용.

◆YS가 밥을 빨리 먹는 사연=YS는 일행의 밥상에 음식이 다 놓이기도 전에 식사를 마치기 일쑤였다. YS의 설명은 이랬다. “해방 후 대학에 다닐 때 서울대 근처에서 하숙을 했지. 하숙생이 열댓 명이 되었어. 아침밥을 차려놓으면 우∼하고 몰려갔지. 한두 점이라도 먹으려면 빨리 먹어야 했지.”

YS는 오전 7시30분 늘 전화를 걸었다. 생전의 김홍조 옹에게였다. “예, 접니다. 별일 없으시죠? 알았습니다. 내일 전화 드리겠습니다”고 했다. 신 전 의원은 “유엔총회 참석차 외국에 있을 때도 거르는 법이 없었다”고 기억했다.

YS가 후보 시절 군 문제와 관련, “당선되면 어떻게 처리하겠느냐”란 질문을 받았다. 그는 “두고 보자”고만 했다. 당시 YS의 머릿속엔 이미 군 내 막강한 파벌인 ‘하나회’를 정리할 계획이 있었다. 신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인수위 시절 공영방송을 민영화한다는 뜻을 밝혀 곤욕을 치르는 걸 보며 당시 일을 떠올렸다”고 적었다.

◆이회창의 눈물=93년 말 쌀 개방 문제로 혼란스러운 와중 YS는 이회창 당시 감사원장을 총리로 기용했다. 두 사람은 늘 삐걱댔다. 이듬해 4월 하순 YS가 청와대 산하 통일안보조정회의체를 만들려 하고 이 총리가 “총리의 승인을 받으라”고 지시하면서 갈등이 폭발했다. YS는 이 총리를 청와대로 불러 “지금 당장 사표를 내지 않으면 대통령으로서 헌법에 따라 해임 조치하겠다”고 호통을 쳤다. 비서실까지 그 소리가 들렸다. 이 총리는 청와대가 발표하기 전에 언론에 미리 “소신껏 사표를 냈다”고 알렸다. 신 전 의원은 “해임이었는지 소신이었는지 양쪽의 말이 다르다”고 했다.

97년 이 총재가 대선 후보 시절 YS에게 “탈당하라”고 요구한 뒤 음성 꽃동네를 찾았다. 20대 장애인 여성이 해맑게 웃으며 ‘나는 행복합니다’란 자작시를 낭송하자 이 총재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고 한다.

◆“파워는 공간이다”=김윤환(작고) 전 의원이 88년 12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을 만났을 때였다. 노 대통령이 “후임 국무총리로 최경록 장군을 임명하려고 연락 중인데…”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잠시 묵묵히 있다가 “최 장군도 좋지만 강영훈 장군은 어떻습니까”라고 했다. 윗사람과 다른 의견을 제시할 때 ‘A도 좋으나 B가 좀 더 낫다’는 식으로 자기 뜻을 비쳐야 한다는 게 김 전 의원의 지론이었다.

노 대통령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김영일 의원의 권력론은 이랬다. “IQ는 지위다. 높은 지위에 있게 되면 자연히 정보가 몰리기 때문이다. 능력은 찬스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녀도 (대통령에게 진언할) 기회가 없으면 쓸모가 없다. 파워는 공간이다. 베개 밑 송사라는 말이 있듯 공간적으로 권력자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이 실질적으로 힘을 쓴다.”

◆5·16의 운명을 가른 군 축구시합=61년 5월 15일 1군 창설기념 전 부대 체육대회가 1군 사령부에서 열렸다. 현장에서 민기식 2군단장이 대노할 일이 벌어졌다. “우린 현역인데 군사령부에선 서울에서 일류 축구선수를 데리고 왔다”는 보고 때문이었다. 이한림 군사령관에게 시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화가 난 민 장군은 다음날 쿠데타 진압을 위해 서울로 출동하란 이 사령관과 윤보선 당시 대통령의 요구도 거부했다. 신 전 의원은 “결과적으론 부정 선수가 낀 축구대항전이 역사를 바꾼 셈”이라고 썼다.

조병옥 박사의 장남이자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의 형인 조윤형(작고) 전 의원. 그는 부인상을 당한 고흥문 전 의원을 조문하면서 불쑥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형님 요즈음 별일 없으시죠?” 고 전 의원은 하도 기가 막혀 “야 이놈아, 마누라 죽었는데 별일이 없느냐고?”라며 웃고 말았다고 한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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