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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格을 높여야 국가경쟁력 살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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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세계적 지휘자 정명훈, 인간 배아(胚芽) 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한 황우석 서울대 교수, 한승수 전 유엔총회의장, 구삼열 아리랑TV 사장, 이호수 한국IBM 기술연구소장이 12일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의 이미지, 무엇을 어떻게 세계에 알릴 것인가'를 주제로 중앙일보와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이사장 최정화 한국외국어대 교수)이 공동으로 기획한 토론회 석상이다. 예술.과학.외교.국제언론.정보기술(IT) 분야를 각각 대표하는 참석자들은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오전 9시20분부터 2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 다음은 발언 요지.

기조 발제(한승수)=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국가에는 ‘국격(國格)’이 있다. 국격을 높이는 일이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길이다. 인격 면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가장 중요하듯 국가간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중요하다. 우리는 한국 전쟁 이후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현재 경제규모 12대 국가의 위치에 올라섰다. 노르웨이·스위스 등 국격이 높은 나라들은 자신들 GNP의 1%를 외국 원조에 쓴다. 우리는 거기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 달라진 국제적 지명도에 상응하는 도덕적 지도력도 갖춰야 할 때다.

▶최정화(사회)=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보면 "한국은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으면서도 특별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는 응답이 많다. 국가이미지가 곧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황우석=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한 뒤 각국의 과학자뿐 아니라 정치.경제분야 인사들까지 '누추한' 우리 실험실을 방문하고 있다. 언제 그런 고위인사들이 한국의 대학 실험실에 와서 두세시간씩 머문 적이 있었나. 실험실을 방문하고 돌아간 고위인사들이 "한국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 말을 전해 듣고 '과학 외교'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호수=새로운 국가 이미지, 그것도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이미지를 세워야 한다. IT가 좋은 대안이다. 우리의 IT 수준은 IBM을 포함한 세계적인 기업들이 인정하고 있다.

▶구삼열=국격을 높이려면 1등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눔의 문화, 상생의 문화를 통한 도덕적 품격을 높여야 한다. 국내의 외국인 노동자.중국동포에 대한 차별 대우 등이 외국에 계속 보도되면 우리의 장점을 아무리 자랑해도 소용없다.

▶정명훈=이미지는 화장이 아니라 목표다. "사람들을 돕는 것이 당신의 주요 임무란 것을 잊지 마세요"라고 했던 교황의 말씀을 항상 잊지 않고 산다. 이미지를 음악으로 얘기하면 결국 소리인데, 어떻게 마음의 소리를 악기를 통해 표현해 내는가가 중요하다. 겉이 아름다워도 속에 파워가 없으면 안된다. 밸런스가 필요하다.

▶한승수=반도체.제철.자동차.조선 등 하드 이미지는 높지만 예술.문화 등 소프트 이미지는 약하다. 남북한 협력을 통한 이미지 제고도 중요하다. 강점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약점을 강점으로 개선할 필요도 있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보다 개방적인 민족주의로 나아가야지 폐쇄되어선 안된다. 평화와 안전, 빈곤과 질병 퇴치 등 세계적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명훈=세계 시민이 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나의 정체성을 말해 보라면 첫째는 인간이고, 둘째는 뮤지션이며, 셋째가 한국인이다. 오랫동안 해외에서 도움받으며 배운 것을 한국에서 풀어 놓고 싶다. 나는 작곡가가 만든 곡을 평생 전달해 온 '딜리버리 맨'이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다. 나를 활용해주길 바란다. 예컨대 좋은 메시지가 있는 자선 콘서트라면, 돈 안받고도 참여할 것이다.

▶황우석=교육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제자들에게 성실성 하나만큼은 지독히 강조했다. 이렇게 바탕을 닦아 놓으니 국내 박사들도 '좋은 상품'이 돼 세계무대에서 통하더라.

▶이호수=흔히 말하는 '동북아의 한국'은 앞으로 '세계속의 한국'으로 바꿔야 한다. 시각을 넓혀 세계인을 껴안을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우리가 세계인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을 보고 정말 큰 감명을 받았다.

▶구삼열=미국 줄리어드 음대 학장이 "한국인만큼 우리 대학의 장학금 혜택을 많이 받은 국민이 없다. 그런데 졸업 후 모금활동이 가장 저조한 것도 한국인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부끄러웠다.

▶정명훈=외국에서 도움받은 것을 의욕과 재능이 뛰어난 한국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돌려줄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부패 문제를 경험한다. 외국에서 돈 안내고 공부했기 때문에 나 역시 아이들을 가르칠 땐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돈을 안받는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은 고가의 물품을 가져오더라. 이해할 수 없다.

▶황우석=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몇년 전 유수한 국제 과학상에 한국인 과학자가 추천됐는데 같은 분야의 다른 한국인들이 이 후보의 단점을 지적하는 편지를 잔뜩 보냈다고 한다. 이런 행동이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킨다.

▶구삼열=국제 공용어로서의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최근 구상 시인이 별세했는데 국제뉴스를 제작하려고 영어로 번역된 시를 구하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정리=배영대.조민근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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