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상에도 꿋꿋이 호투 … “고맙다, 랜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한국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한 랜들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인천=이영목 기자]

 “부친상을 당했는데 한국에 남아있는 것만도 고맙지요.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광속구를 던져준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한국시리즈 1차전이 벌어진 26일 인천 문학구장. 김경문 두산 감독은 경기 전 선발로 등판하는 외국인 투수 맷 랜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평소 성실하기로 이름난 그가 최근 부친상을 당하고도 두산의 마운드를 지키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수년간 폐암과 투병했던 랜들의 아버지 로이 랜들(68·미국 시애틀 거주)은 삼성과의 플레이오프가 한창이던 지난 22일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랜들이지만 이국땅에서 전해 들은 아버지의 부음은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선수단을 감동시킨 것은 부친상을 당하고도 꿋꿋한 랜들의 태도였다. 아버지의 부음을 전해 들은 22일은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6차전을 하루 앞둔 휴식일이었다. 당시 두산은 3승2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1승만을 남겨놓은 상황. 하지만 랜들은 선수단 사기에 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해 코칭스태프는 물론 동료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랜들은 이튿날인 23일 6차전에서 승리해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은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주위에 알렸다. 이것만으로도 모자라 그는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고 여기 남아 한국시리즈까지 던지겠다. 그것이 아버지가 바라는 바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운명을 예상했을까. 랜들은 포스트시즌을 시작하기에 앞서 첫 합동훈련 때 “마음의 준비를 위해 하루 더 휴식을 취하고 싶다. 대신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더라도 끝까지 남아 던지겠다”고 김 감독에게 요청했다.

랜들은 약속대로 한국시리즈 1차전에 선발투수로 나왔다. 2회 말 SK 김재현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했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고 5와3분의1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내며 승리투수가 됐다. 아버지에게 바치는 승리였다.

인천=정회훈 기자 , 사진=이영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