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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수 시점은 신의 영역, 선택 고민 안 해도 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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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26면

이제 투자자들은 자포자기 상태다. 코스피지수는 단숨에 1000포인트가 깨졌다. 박스권을 맴돌다 20년 만에 상승 기지개를 폈던 2005년으로 주가가 원상 복귀한 셈이다. 묘하게도 당시는 ‘적립식 투자법’이 막 꽃피기 시작한 때였다. 원점으로 돌아온 지금, 적립식 투자자마저 시장에 환멸을 느끼진 않을까. 자산운용협회 김정아 실장은 “짙어지는 환매 공포 속에서 펀드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적립식 펀드가 마지막 보루”라고 토로했다. 사실 어려울수록 기본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적립식 성적표는 과연 어떤지, 불안한 앞날에 위기의 원군이 될 수 있는지 살펴봤다.
 
4년 수익률은 거치식이 월등
사실 기존의 통념적인 재테크 기사에선 개별적인 적립식 수익률을 파악하기 힘들다. 한번에 돈을 넣는 ‘거치식’ 개념으로 펀드 수익률을 다루기 때문이다. 특정 시점에 목돈을 넣었을 때 지금까지 돈이 얼마나 불었는지 나타내는 ‘시간 가중’ 수익률을 사용하는 것이다. 펀드 매니저의 역량을 한눈에 파악하기엔 좋다. 그러나 개별 투자자들의 주머니가 실제로 어땠는지 재려면 실제 들어간 자금별로 ‘금액 가중’ 수익률을 구해 봐야 한다. 물론 일일이 따져 봐야 하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펀드시장의 보루 ‘적립식’ 해부

그래서 중앙SUNDAY는 일단 가상 사례를 써서 수익률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회사원 A씨가 한 달에 10만원씩, 2005년 1월부터 펀드에 발을 담갔다고 가정했다. 분석은 펀드평가사 제로인의 이수진 애널리스트가 맡았다. <그래픽 참조>

결과는 의외였다. 주가가 크게 올랐다가 다시 단박에 떨어진 3년10개월간의 성적표는 오히려 적립식이 거치식보다 저조했다. ‘주가 변덕에 아랑곳 않고 거북이 투자를 하면 더 달콤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했다면 낭패를 당한 셈이다.

자세히 보자. 미래에셋의 디스커버리 펀드에 적립식으로 투자했을 때 원금 460만원은 현재 476만원밖에 안 된다. 나름대로 4년 가까이 차곡차곡 기다리며 돈을 넣었지만 수익률은 3.5%뿐이다. 기간별로 분석하면, 최초~2005년 말까지 1년간 납입한 각 10만원은 월별로 20~80%에 이르는 고수익을 뽐냈다. 이수진 애널리스트는 “지수 1000포인트가 깨졌지만, 2005년 초~봄까지는 코스피가 이보다 더 낮은 수준(900초반)이었기에 아직까진 수익률이 약간 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주가 방어력이 강한 기업들을 편입한 펀드들은 더욱 선방했다. 한국운용의 삼성그룹주 펀드가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총 9.5%의 성적을 냈고, 원금은 500만원이 됐다.

하지만 주가가 급격한 기울기로 우상향하기 시작한 지난해 봄부터 납입한 각 10만원은 마이너스 성적을 냈다. 투자한 종목들의 주가가 당시보다 떨어졌으니 당연하다. 적립식이 급격하게 불어난 2006~2007년에 투자를 했다면 원금을 손해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예컨대 삼성그룹주 펀드만 해도 2006년 6월에 들었다면 원금 290만원은 현재 256만원으로 줄었다.

이에 비해 거치식은 아직까지 수익률이 짭짤하다. 쌀 때 한 번에 사 놓았던 효과 때문이다. 디스커버리 펀드는 86% 수익률로 원금을 857만원으로 불렸다. 신영투신의 마라톤 펀드도 74%의 성과로 800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지난해 7월 이후엔 적립식 판정승
지금까지 결과만 보면 ‘거치식 > 적립식’의 공식이 성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4년은 이례적인 장이었다. ‘거품’이라는 변수가 끼면서 급등과 폭락이 뒤죽박죽됐다.

이수진 애널리스트는 “적립식 펀드가 효과를 보려면 상승과 하락이 계곡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펀드가 투자하는 주식의 평균매입단가를 낮추는 효과(Cost averaging) 때문이다. 가격이 낮을 때는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주식을 사고, 높을 때에는 적게 사서 평균단가를 낮추는 것이다. 신의 영역이라는 매수 시점을 포착하기 위해 공 들이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물론 장기를 염두에 둬야 이런 투자가 가능하다. 워런 버핏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도 일반인에게 이런 투자법을 권했다.

적립식마저 별로라면 애물단지 취급을 해야 할까.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시장이다. 펀드시장으로 들어올 돈의 물줄기가 말라 가는 상황에서 당분간 우상향은 어렵고 들쭉날쭉 변동성은 더욱 커지리라는 시각이 대세다. 적립식에 유리한 시기라는 소리다.

실제로 어땠는지 짚기 위해 주가 변동성이 커지기 시작한 지난해 7월부터 지금까지의 국내외 펀드 수익률을 별도로 시뮬레이션해 봤다. 삼성그룹주 펀드는 적립식(-23%)이 거치식(-30%)보다 훨씬 선방했다. 디스커버리도 적립식(-30%)이 거치식(-33%)을 눌렀다. 해외에선 신한BNP운용의 봉쥬르 차이나 펀드에 적립식으로 가입했을 때 수익률이 -42%였다. 적립원금 160만원은 91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거치식으로 투자했다면 87만원이 됐다. 미래에셋의 차이나 솔로몬 펀드도 적립식(-45%)이 거치식(-46%)보다 조금 나았다.

당분간은 적립식을 유지하면서 장 흐름을 눈여겨보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수진 애널리스트는 위에서 분석한 투자 성과를 합친 ‘짬뽕 스타일’을 권했다. 기본적으로 하락장에서 적립식을 몸통으로 삼고, 슬슬 상승세가 확인되면 초반기 주가가 낮은 시점에서 납입금을 늘려 거치식 효과도 함께 누리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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