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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은 흘려보내고 가을을 낚는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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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16면

가을빛이 무르익어 갈 즈음이 플라이 낚시 시즌의 절정. 플라이 낚시의 대상어는 주로 열목어(오른쪽 위)나 송어(오른쪽 아래)처럼 차고 맑은 물에 사는 어종이다.

플라이 피셔는 새벽을 사랑한다. 강에 사는 어종들은 대체로 해 뜨고 3시간, 해지기 전 3시간 동안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날 함께 동행한 다음 카페 ‘아름다운 플라이낚시’ 동호회원들 또한 그렇다. 아직 새벽 5시가 채 되기 전인데도 벌써 완전무장을 하고 한 낚시점 앞에 집결했다.

꾼들 유혹하는 플라이 낚시의 계절

“낚시 생각만 하면 잠이 안 오죠. 새벽 3~4시만 되면 눈이 저절로 떠지는걸요. 새벽에 못 가면 아예 오후에 가는 게 낫죠.”

플라이 피셔 10년 경력의 베테랑 조사, 최인호씨의 말이다. 이날 도착한 곳은 경북 봉화군 석포리의 한 계곡, 가뭄 때문인지 수위가 평소보다 낮다. 이제 막 어스름이 가신 시각이지만, 낚시 가방을 추스르는 모두의 눈빛이 금빛으로 빛난다.

“오늘 훅(Hook)은 뭘 써야 될까?”
“요즘은 메뚜기가 최고지~.”
“어제 메뚜기 만드느라 두 시간밖에 못 잤어~.”

잡은 고기를 놓아 주는 캐치 앤 릴리스는 플라이 낚시의 기본 매너다.

간밤에 준비한 날벌레가 담긴 훅박스(Hook Box)를 펴놓고 다들 한마디씩 거든다. 각자의 박스 안에는 하루살이·송충이·날도래 등 실제 날벌레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든 훅으로 가득하다.

‘공갈 미끼’를 쓰는 플라이 낚시는 어떤 훅을 쓰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다. 플라이 훅(Fly Hook)은 벌레 모양의 털바늘이다. 갖가지 벌레 모양의 훅을 만드는 행위를 타잉(Tying)이라 하는데 보통 손재주로는 만들기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최인호씨는 “타잉 기구를 이용해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떠나기 전의 설렘을 위해 여행을 즐기듯 물에 나가기 전 타잉의 과정은 플라이 낚시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얼마나 비슷하게 만들면 물속의 예민한 물고기들이 덥석 물겠는가?

자연 그대로, 캐치 앤드 릴리스
드디어 웨이딩(Wading) 타임, 플라이 피셔가 물속에 발을 담그는 이 순간이야말로 머리카락이 송연해질 정도로 기대감 충만한 시간이다. 첨벙첨벙 저수지로 뛰어드는 개구리처럼 이내 강물 주위에 피셔들이 도열했다. 대나무 낚싯대가 착 감긴 플라이 라인은 아지랑이 같은 루프(Loop)를 그리며 수면 위로 떨어진다.

몇 번의 캐스팅이 반복되는가 싶더니 어디선가 ‘히트’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마수걸이는 역시 프로페셔널 플라이 피셔 박정(사진)씨의 차지다. 박씨의 낚시대가 포물선을 그리며 크게 휘어진다. 모든 낚시는 이 순간이 가장 짜릿할 것이다. 낚시꾼과 물고기의 힘찬 힘겨루기, 특히 탄성이 좋은 대를 쓰는 플라이 낚싯대는 작은 놈이라도 걸기만 하면 활시위처럼 훅 휘어진다.

박씨는 낚싯대를 좌우로 움직이며 줄을 놓았다 감았다 당기기를 거듭한다. 마침내 힘이 달린 열목어가 아가미를 늘어뜨리며 고운 얼굴을 내비친다. 그러면서도 파닥파닥 몸짓으로 끝까지 손맛을 더해 준다.

“이 순간 너무 짜릿해요. 까만 점들이 박힌 보디라인이 정말 예쁘지 않아요?”
박씨의 일성에 사위는 일순 부러움의 눈빛이 가득하다. 얼른 봐도 50㎝ 정도는 족히 되는 것 같다. 몸통에 상처가 날까 살며시 뜰채로 떠 열목어를 번쩍 들어 올려 보인다. 박씨는 열목어의 입가에 상처가 나지 않을까 염려해 조심스레 훅을 제거하고 두 손으로 얌전히 놓아준다. 마음속으로 ‘잘 가라, 열목어야’라는 메시지를 담아.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브래드 피트는 ‘댄디가이’의 섹시함보다 사람 좋은 시골 청년의 면모를 보여 준다. 잘생긴 얼굴만큼이나 출중한 그의 연기력은 ‘캐치 앤 릴리스(Catch & Release)’라는 플라이 낚시의 컨셉트를 놓치지 않는다. ‘캐치 앤 릴리스’란 잡은 고기를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잡아서 집으로 가져가기 위한 것이 아닌 낚시 자체를 즐기는 문화다. 플라이 낚시가 신사적이고 친환경적 낚시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특히 열목어는 보호 어종인 만큼 반드시 살려 주는 게 플라이 피셔의 기본이다.

쉼 없이 움직이는 액티브한 레저
플라이 낚시는 다른 낚시에 비해 익혀야 할 게 많다. 입문하기 위해 적어도 플라이 캐스팅, 타잉, 생태환경 등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빠른 사람은 물가에 나가 몇 번 연습하고 바로 캐스팅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개월 연습해도 캐스팅이 안 되는 사람이 있다. 타잉도 마찬가지다.

초보자의 경우 캐스팅을 배우는 데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낚시꾼이 원하는 지점에 훅을 보낼 수 있느냐가 플라이 피싱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내성적인 사람은 동호인을 찾아가 묻고 배우기가 어려워 혼자 동영상과 책을 보고 익히기 일쑤인데, 당연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적극적 자세로 문을 두드리는 게 좋다.
무엇보다 플라이 피셔에겐 물고기보다 더 날랜 활동성이 필수다.

“영화 속에서는 플라이 낚시가 정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게 정말 많이 움직여야 하는 스포츠예요. 물살·너덜을 헤치고 계곡을 쉼 없이 오르내리며 하는 낚시거든요. 낚시하는 도중에 낚싯대를 계속 흔들면서 챔질을 해줘야 하구요. 미끼 또한 사는 것보다는 손으로 직접 만든 미끼를 써야 해요. 공격적인 낚시 방법이라 할 수 있지요. 미끼부터 캐스팅, 챔질까지 스스로 개척해야 하기 때문에 한 마리 건져낼 때마다 성취감이 크죠.”

프로 피셔 박정씨의 조언이다. 계곡을 거닐며 몸과 마음으로 자연을 즐기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이 어느덧 해는 중천에 떠 있다. 약속이나 한 듯 피셔들이 모여든다.

“많이 잡았어요?” “
“우와. 저는 간신히 얼굴만 봤어요.”

그러나 조과에 대한 아쉬움은 이미 흐르는 강물에 실어 보낸 뒤다. 누군가 “저녁 시간을 노려 봅시다” 하고 외친다. 다들 툴툴 털고 점심식사를 시작한다.

플라이 낚시 동호인이 선호하는 지역은 강원도 영서·영동 지역이다. 내린천·진동계곡·북천·기화천·오십천 등이 대표적이다. 경북 봉화, 충북 일부 지역에서도 1급수 어종인 송어·산천어·열목어 등을 대상어로 플라이 낚시를 즐긴다. 플라이 낚시는 잉어나 끄리·강준치, 그리고 눈불개 같은 강에 서식하는 물고기도 대상어로 한다. 동호인의 증가와 환경문제로 어족 자원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해가 산그늘에 가려 계곡에 서늘한 기운이 돈다. 플라이 라인을 바짝 당겨 잡고 수면에 집중해 본다. ‘흐르는 강물처럼’의 주인공 폴(브래드 피트)이 ‘블랙 풋 리버’에서 보여 준 송어와의 파이팅 장면을 떠올리며 열심히 앞뒤로 캐스팅을 한다. 플라이 라인은 쉼 없이 공중을 가로질러 멋진 루프를 그린다. 플라이 훅이 흐르는 물 저편에 사뿐히 내려앉는 그 순간, ‘잡느냐 못 잡느냐’는 이미 관심 밖이다. 흐르는 강물에 욕심을 흘려 보내고, 강태공의 무욕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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