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1년 만에 54% 하락 … 사실상 외환위기 수준으로 떨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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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외환보유액이 많고, 국내 금융회사·기업의 기초체력이 튼튼한데도 주가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명목 주가는 아직 외환위기 때보다 높다. 하지만 기업이 가진 자산을 감안한 실질 주가는 당시 수준까지 주저앉았다.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투자전략팀장은 “현 주가를 기업이 보유한 주당 자산가치로 나눈 주가순자산배율(PBR)이 0.67배로 내려왔다”며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저점을 찍었던 1998년 6월이 0.62배였다”고 말했다. PBR이 0.67배라 함은 기업들의 보유자산을 다 팔면 상장주식을 다 사고도 33% 남는다는 뜻이다. 그는 “앞으로 경기가 가라앉고 외국인이 한국 증시를 떠난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는 지나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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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가치 〉 주가’=대우증권에 따르면 24일 기준 거래소시장에서 시가총액이 큰 100개 종목 중 53개의 PBR이 1 아래로 떨어졌다. 21개 종목은 시가총액이 자산가치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국전력의 PBR은 0.31배밖에 안 된다. 한국 대표기업인 포스코조차 0.8이다.

기업이 벌어들이는 수익과 주가를 비교해봐도 한국 주식은 저평가돼 있다. 한국의 현 주가를 기업이 벌어들이는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주가수익비율(PER)은 7.7배다. 10.3인 일본은 물론 중국(13.1)·대만(9.1)·홍콩(8.9)이나 필리핀(9.6)·싱가포르(8.1)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만큼 한국 기업이 돈 벌어들이는 능력에 비해 주가가 싸다는 뜻이다. 대우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현재 PBR이나 PER은 시중은행과 현대·대우그룹이 쓰러졌던 외환위기 때 수준”이라며 “우리나라 금융회사와 기업의 기초체력에 비해 과도하게 낮은 상태”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뺨치는 폭락=97년 6월 792를 찍은 뒤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인 12월 24일까지 6개월 동안 코스피지수는 53.8% 떨어졌다. 지난해 10월 말 2064로 최고점을 찍은 코스피지수는 24일까지 1년 만에 54.5% 하락했다. 하락률만 보면 외환위기 때만큼 급락한 셈이다. 그 사이 시가총액은 1029조원에서 477조원으로 552조원이 증발했다.

외환위기 때는 단기간에 급락한 만큼 반등의 폭도 컸다. 97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바닥을 친 코스피지수는 두 달 만에 56.8% 반등했다. 이후 IMF의 요구에 따른 고금리 정책으로 기업 연쇄 부도가 나오면서 다시 떨어져 98년 6월 280까지 밀렸지만 1년 만에 전고점을 회복했다.

◆“지나친 비관 말아야”=일각에선 외환위기 때보다 현재 여건이 더 나쁘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엔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대거 사들였으나 이번엔 거꾸로 팔고 나가고 있다. 게다가 국가부도 위기를 넘긴 후에는 정보기술(IT)주 붐에 ‘바이 코리아’ 열기와 함께 분 펀드 바람으로 증시 회복도 빨랐다. 이와 달리 이번에는 펀드시장이 쑥대밭이 된 데다 증시에서 새 성장동력을 찾기도 쉽지 않다. 국내 경기 전망도 암울하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감안하면 외환위기 때 수준으로 주가가 곤두박질한 것은 지나치다는 평가가 많다. 한화증권 민상일 연구원은 “98년 이후 외국인 움직임을 보면 코스피지수 1000 밑에서는 주식을 샀다”며 “세계적인 금융위기만 수습된다면 한국 증시가 외국인에게 다시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경민·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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