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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로마와 중국 황제가 다른 이유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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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역사: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남경태 지음, 들녘
688쪽, 3만8000원

 역사란 문명 간 변화와 경쟁의 연속이다. 다른 문명보다 먼저 변화하고 이에 적응하는 문명이 살아남는다. 20여 년 간 역사와 철학 등 인문학 분야의 책을 쓰고 번역해 온 저자는 인류 역사의 뿌리를 크게 극동을 중심으로 한 동양과, 유럽 및 북아메리카의 서양 문명 두 가지로 나눈다. 저자는 우선 문명 간의 차이에 주목한다. 동아시아의 역사는 뿌리가 뻗은 자리에서 큰 나무로 자랐다. 중원·천하 등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농업 등에 필요한 토지가 풍부했기에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만리장성은 보호막이기도 하지만, 동양문명의 진출을 가로막는 장벽이기도 했다. 반면, 서양의 역사는 팽창의 역사다. 지중해에 둘러져 있어 필요한 자원을 마련하기 위해 바다로 나가는 일은 극히 자연스러웠다.

 정치체계에서도 차이는 두드러졌다. 로마의 황제는 제국의 모든 것을 소유하지 못했다. 전쟁을 치르기 위해선 군대와 합의를 보아야 했고, 승리의 대가로 전리품을 약속해야 했다. 때문에 로마 군단의 지휘관은 한 도시를 점령했을 때 병사들에게 사흘 동안 약탈할 기회를 허용해야했다.

15세기 ‘해상왕’으로 불린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도 자비로 함대를 마련해 동방 무역로를 개척했고, 17세기 영국의 왕 찰스는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의회와 다투다가 결국엔 죽임을 당했다. 모든 것의 주인인 중국의 천자로서는 기가 찰 일이다. 실제로 ‘프린켑스(제1시민)’를 자청한 로마의 아우구스투스처럼 유럽의 황제란 결국 여러 귀족 사이에서 ‘1번’인 자를 의미할 뿐이었다. 같은 귀족이라도 황제를 보필하는 제한적 역할에 머물렀던 중국과는 분명한 차이다.

지은이는 일단 동양문명이 서양에 무릎을 꿇었다고 규정한다. 동양문명이 제자리를 맴돈 데 반해 중동에서 시작한 서양문명은 그리스와 로마, 서유럽 등을 거쳐 이제는 한국과 일본 등에 뿌리를 내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문명이 항상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몽고·흉노·돌궐족 등 ‘동양의 오랑캐’들은 유럽을 피바다로 만들었다. 흉노족의 왕 아틸라는 유럽인들 사이에서 ‘신의 재앙’이라는 별명을 얻어가며 서유럽의 갈리아(지금의 프랑스)까지 정복했다. 13세기 몽고족은 동유럽과 러시아를 유린하고 독일 동부 지방까지 파죽지세로 밀어닥쳤다.

저자는 동양문명은 상대적으로 더 우월한 통치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유럽처럼 피로 피를 씻는 분열의 역사가 없었던 탓에 국가 간 협력이 원활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삼십 년 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 같은 분열과 치유의 과정을 동아시아도 반복해서 거쳤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가능했을 것이란 역설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서양문명을 마냥 칭찬하지만은 않는다. 민주주의의 원형으로 추앙받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 역시 정치 지형이 폴리스로 분립된 이상 어쩔 수 없이 채택하게 된 것이라고 꼬집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관행이 서양에서 발달한 것도 실제로는 동양의 지배자가 직접 전쟁터에 나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실제로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의 귀족들이 자발적으로 전쟁 비용을 부담했을 뿐 아니라 평민보다 먼저 전장에 나가 싸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자발적 참전은 개인적 용기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신분에 따라 사회적 역할이 주어졌던 로마 사회 분위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로마 최고의 권력자인 카이사르가 험난한 갈리아 정복에 나선 것도 전장에서 세운 공로가 적다는 ‘결격사유’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역사란 아이러니의 연속이기도 하다. 13세기 의회주의가 처음 싹을 틔운 곳도 유럽의 변방인 잉글랜드였다. 그나마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인쇄기와 활자는 종교개혁의 바람을 가속화시켰다. 현생 인류가 탄생한 곳으로 알려진 아프리카에서는 4000만 명의 흑인 노예가 팔려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인 비틀스가 노래를 시작한 영국의 리버풀은 노예무역을 통해 번성한 곳이다. 동일한 사실이라도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완전하게 달라질 수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지은 E.H. 카도 “역사적 사실보다 사관과 해석의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역사란 이를 평가하는 사람의 문제란 얘기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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