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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난장커뮤니케이션즈 27세 꿈지기 전수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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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우리에게 난장이란 과연 무얼까.사전적으로 푸는 말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별로 떠오르는게 없다.「정해진 장날외 특별히 며칠 터놓은 장」.오히려 난장판,속되게 얘기하면 「개판」이란 단어가먼저 떠오를 뿐이다.그런데도 난장에서는 뭔가 와닿 는게 있다.
5일장과는 다른 게릴라같은 느낌.또는 엉뚱한 임무수행을 위해 움직이는 별동대.
그 난장판에 전수환이라는 난해한-혹은 아주 단순한-인물이 있다.69년생이니까 올해 만 27세.컴퓨터를 전공하면서 갑작스레영장을 받아 사라진 친구자리에서 연극을 했다.제목은 『안내놔?못내놔!』(다리오포 원작 『돈내지 맙시다』).
그것도 자신이 경사.경감.장의사.노인등 1인 4역을 감당하는것이었다.
격식파괴.그리고 문턱 낮추기.그렇게 형성된 공간은 모두의 화해를 이끌어내는 장이기에 충분했다.세상의 갈등은 자신의 실체를감추고 대신 허상을 앞세우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니까.전수환이 열려는 지평의 출발점도 물론 마찬가지다.「무형식- 비바람-온 사람의 발길」로 이어지는 논리의 끝은 역시 난장이었던 것으로 보면 된다.그는 지금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과정중이다.
전공은 경영정보학.문화예술을 멀티미디적 이벤트로 엮어내려는 석사논문-쉽게 말해 헨델의 오라토리오를 감상하면서 졸아야 하는 이유에 관한 것-으로 화제를 뿌렸기에 박사논문에 더 부담을 갖고 있기도 하다.
93년 전수환은 문화예술의 정보전달과정 공부를 위해 6개월 일정으로 유럽여행중이었다.그는 열린세상 유럽의 정보전달 유형 공부를 위해 오페라를 모델로 잡았다.사전 준비는 꽤나 흡족한 수준.이탈리아어까지 상당히 습득했으니 말이다.하지만 아뿔사! 그것은 어릿광대같은 짓에 불과했다.
그가 그런 종류의 예술을 접하는 것 자체가 허무한 일이었다고나 할까.그에게서 유럽행의 목적성은 소멸됐다.그는 미아처럼 거리를 쏘다녔다.
□ 허의도.원낙연 기자 영국 어느 이름모를 길목에서 「김덕수사물놀이 한울림」사무국장 이선철을 만났다.이게 「난장」이라는 그릇 만들기의 첫 인연.
전수환은 학업을 계속했다.하지만 끊임없이 그를 괴롭힌 것은 다시 난장.일단 멍석을 깔기로 했다.음반팀장에 김병찬,스튜디오실장에 이훈석등이 보따리를 풀고 주저앉았다.지난해 그리고 올봄난장커뮤니케이션즈라는 회사를 공식적으로 차렸다.그 리고 8월 독일 베를린에서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난장 빅밴드를 끌고 한바탕잔치를 벌였다.베를린 난장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3 전수환 본인의 공식직함은 「꿈지기」다.멀티미디어 팀장이라는 명칭이 싫어 본인이 직접 만들어 냈다.멀티미디어를 통한 정보제공업을 IP라고 하든가.그는 인포메이션 프러바이더 대신 팬터지 프러바이더로 자처하면서 그것을 우리말로 풀어 꿈지기가 됐다.
그런 난장의 꿈지기 전수환이 지금은 고민에 빠져 있다.학교로되돌아가야 하는데도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자신의 표현대로라면 『이미 사고를 친 것같고 너무 깊숙이 학문이 아닌 현장에 발을 담갔다』는 것이다.여기에다 그는 난장이 란 단어를 모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부질없는 부담감을 안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회사 이름으로 「난장」을 쓰다보니 본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게 그의 판단.그래서 그는 해를 넘기기 전에 회사를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난장이라는 이름을 보통명사로 돌려줄 것을 궁리중이다.
「전통은 지키는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전수환 행위의 출발선상은 바로 이것이다.우선 그는 김덕수 사물놀이를 인터넷에 올리는 작업부터 시작했다.우리가 사치스런 감정을 구태여 억누르며 재즈카페에서 와인을 즐기듯 서양사람들이 막걸리를 들이켜며 사물놀이를 듣는데 익숙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리고 다시 난장.마을의 우환이나 악귀를 물리치는 행위의 하나로 간주됐던 난장.그리고 각설이패.유랑극단.남사당패가 몰리고팔도 특산물이 팔리던 집합지.그 열린공간에 장안의 내로라하는 인물이 다 몰렸다.사물놀이 웹페이지 구축작업에 다음 커뮤니케이션즈의 이재웅,웹인터내셔널의 윤석민,또 디자인회사 아트스페이스의 박승우등이 가세했다.
난장이 「분열극복」의 이념을 내세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는베를린 페스티벌을 통해 「난장=통일이념을 실천하는 작은 씨알」이란 등식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됐다.스스로를 「어린왕자 중증 환자」로 치부하는 전수환.그의 전통.멀티미디어 접합이나 통일실천의 노력이 어린왕자의 꿈에 불과하다는 자기비하일까.하지만 오늘(9일) 전수환은 자신의 모교 연세대로 간다.한총련 사태 후유증을 달래는 『비나리』『씻김굿』같은 난장판 한복판에 서 있기위해.
허의도.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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