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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방송사 틀에 시청자 맞추기 급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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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천직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할래요." 11일 발간한 책 ‘방송 모니터…’에서 맹씨는 방송 모니터의 요령과 핵심을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신동연 기자]

‘방송 모니터링(비평)’은 지난(至難)한 작업이다. 한 줄의 비판을 위해 매일 시간과 씨름해야 한다. “당신이 뭔데”라는 일부 제작진의 거센 항의도 감수해야 할 몫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인내와 사명감 없이는 오래 버티기 힘든 게 TV 비평이다.

이런 면에서 주부 맹숙영(42)씨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시민단체를 통해 우연히 접한 'TV 모니터링'의 길을 12년째 뚫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 운영으로 모자라 11일엔 '방송 모니터 WHO&HOW'(커뮤니케이션 북스)란 책까지 펴냈다. 2000년 '맹여사는 어떻게 방송모니터가 되었을까'에 이어 두번째다. 건강한 비판을 위해 늘 방송과 더불어 산다는 맹씨. 이런 그녀의 눈에 비친 2004년 한국 방송은 어떤 모습일까.

"방송사들은 입만 열면 시청자가 주인이라고 하지 않나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시청자에게 프로그램을 맞추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틀에 시청자를 끼워넣는 식이죠. 시청자의 진정한 권리를 되찾고, 브레이크 없는 방송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우리(시청자)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단호했다. 맹씨는 최근 KBS.MBC.SBS 등이 너도 나도 '시청자 주권'을 내세우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방송사는 시청률에 비해 시청자들이 정말 원하는 프로그램이 뭔지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것 같아요. 지난해 토론.시사 비평 프로가 많이 생겼지만 사전에 의견조사나 해봤을까요. 또 시청자 참여가 늘고 있다고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연예인 대신 활용하는 정도인 것 같아요."

맹씨는 무엇보다 방송사가 여론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경향을 경계했다. 방송은 다양한 정보와 시각을 제공하면 되고 어디까지나 판단은 시청자의 몫인데도, 우리 방송은 스스로 정한 답안을 강요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맹씨의 이 말은 지난해 KBS 자체 경영평가보고서의 "KBS는 BBC 같은 선진 언론에선 찾아보기 힘든, 지나친 계도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을 연상시킨다.

비슷한 시간대에 비슷한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현상도 10여년 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연예인에게 너무 의존할 뿐 아니라 내용과 구성, 진행자, 출연자들이 비슷해 결국 시청자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볼 권리가 박탈되고 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시청자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맹씨는 방송사가 시청률만 매일 조사할 것이 아니라 개편을 앞두고는 시청자들이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 철저한 여론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 시청자들이 올바로 TV에 접근할 수 있도록 '미디어 교육'을 공교육화하는 방안도 생각해 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시청자 스스로 TV를 올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을 때 자신의 권익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방송위원회 심의를 강화, 제재 수위를 대폭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맹씨는 시청자 중 의욕과 전문성을 갖춘 이들과 함께 '방송모니터 협회'를 만드는 구상을 하고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시청자들이 여러 방식으로 방송을 견제하게 되면 방송사들의 제작 형태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텐데…. 결국 해법은 방송사가 시청자를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존중하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이상복 기자<jizhe@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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