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복마전,서울시뿐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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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시내버스업자들이 시청공무원들과 짜고 적자를 조작해 버스요금을올린 사실이 드러나 시민들이 들끓고 있다.버스운임 인상 때마다서비스의 질을 개선하지 못하는 것을 버스회사들의 적자운영 탓으로 돌렸었는데 그 모두가 속임수라니 시민들이 분노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복마전 서울시를 깨끗이 청소하겠다는 공약으로,서울시의 포청천이 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된 시장의무능을 질책하고 비아냥댄다.
거리엘 나가보면 버스는 차선도,주차질서도 아랑곳없이 마구잡이로 무법자처럼 달리는데 그것을 단속하는 교통경찰은 없다.서민들이 소소한 위반만 해도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위반딱지를 떼는 교통지도원들도 버스의 불법엔 아예 외면한다.버스회사 뒤엔 든든한「빽」이 있는데다 높은 곳에 정기적으로 상납하는지 적발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이다.실제로 드러난 것으로 봐도 그들은 온갖 곳에손을 썼다.경찰서.구청.세무서.노동부…,무려 20여곳에 정기적으로 한달에 수천만원씩을 돌렸다고 한다.그러니 버스의 무법을 다스릴 곳이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복마전이 어찌 서울시 뿐일까.바로 진짜 문제는 부패가 너무 일반화되고 너무 일상적이 됐다는 것이다.부패가 마치 매일 숨쉬는 공기처럼 되어 모두들 그 부패의 무법을,부패의 오만을 보면서도 무감각하게 보고 넘기는 것이다.속임 수를 써가면서 까지 자신들의 가벼운 호주머니를 턴 것이 드러나자 그제서야모두 화를 낸다.부패에 대한 불감증이 바로 문제다.
한때 자동차 보험회사가 잘 안된다고 했다.자동차정비업소와 보험회사 직원들이 짜고 사고를 과장해 보험금을 빼내니 회사가 견딜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직원들의 부패가 회사를 거덜내듯 시청공무원들의 부패가 시정(市政)을 거덜낸다.그리고 고위공직자의 부패와 단속기관들의 방조가 바로 국가를 거덜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양호(李養鎬)전국방장관 비리에서 6공정권의 무분별한 부패,대통령의 딸까지 개입된 비리현상을 보았다.지금도 제기되고 있는 대잠(對潛)초계기의 의혹,탱크 야간 투시경 의혹등 무기도입을 둘러싼 비리가 사실이라면 부패로 인해 군전력■ 약화되고 우리 안보의 어느 한귀퉁이에 허점이 뚫려있을 수 있다.
농약이 다량 검출되는 외국농수산품들이 뇌물 몇푼에 통관됐다면바로 부패가 국민 건강을 좀먹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우리 상품들이 제대로 품질검사를 받지 않고 뇌물 몇푼에 모두 합격품이 되어 외국에 나가봤자 경쟁력이 제대로 있을리 없 다.부패가 우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바로 그 이양호씨를 적당한 부패 혐의로 구속한다.부패의 전모가 밝혀지는 법은 한번도 없다.깊이 추궁하면 문제가 여러 곳으로 확대되기 때문인지 항상 당사자만 구속하는 「적정수준의 부패」에서 수사는 종결된다.
지난 총선에서 명백한 범법행위를 저지른 국회의원 당선자를 선관위가 몇달간의 실사(實査)끝에 고발했는데도 불구하고 검찰은 그것을 묵살한다.국회의원들이 엉터리로 재산신고한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는데도 그것을 비공개 경고하고 만다.그 배경이 뭔지 모르지만 그것은 결국 국가 공권력에 의한 부패의 은폐에 다름 아니다. 시장이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대통령이 칼국수만 먹는다고 해도 주변이 이처럼 부패의 패거리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문민정부는 바로 그 부패 사정(司正)을 정권의 기초로 삼았었다.그러나 만약 공무원 사회의 부패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면,오히려 더 음성화되고 더 만연되었다면 결국 사정개혁은 적당한 수준 이상의 부패에 면죄부를 준 꼴밖에 되지 않는 다.
정부가 벌이겠다는 제2의 사정개혁이 소나기식의,국민들의 분노를 덮기 위한 임시방편이어서는 안된다.끈질기고 집요하게,그리고먼저 권력의 핵심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으면 안된다.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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