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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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큰아들 내외는 이제 40대 한가운데.며느리는 남편보다 두살 아래다. 이 한창 나이에 둘은 별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아들은 직장터인 뉴욕에,며느리는 원래 살던 보스턴 집에 있다.하이스쿨에 다니는 아들 뒷바라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 핑계였지만 장년의 부부가 같은 미국땅 안에 살며,그것도 뉴욕과보스턴의 지척(咫尺)과 같은데서 한달에 두번 정도 서로 오갈 뿐이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닌가.
큰아들 맥(貊)이 보스턴 집에 가는 것은 주로 고교에 다니는아들과 만나기 위해서였고 며느리가 뉴욕에 가는 것은 대체로 옷가지 등을 쇼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지 말고 애를 기숙사에 넣고 뉴욕에서 남편과 같이 있도록해라.반듯하게 아이들을 단속하는 기숙사라니까 혼자 막 자랄 염려는 없을 게다.어려서 규율생활 해보는 것도 남자아이들에겐 특히 좋은 교육경험이야.그러다 주말에 애비와 함께 보스턴 집에가서 식구가 함께 만나면 좋지 않겠어?』 을희가 대안을 제시했지만 며느리는 듣지 않았다.
『어머니께서는 손자를 잘 모르세요.제가 옆에 없으면 밥도 제대로 먹지 않는 아이인데요.』 국제전화선 너머 아스라하나 잘라말하는 며느리 대답에 쯧쯧 혀를 찼다.
『사내녀석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키운단 말이냐.』 「아이를 고양이 키우듯해서는 못쓴다」는 소리가 목젖까지 치밀었으나 도로삼켰다.입안이 떨떠름했다.
며느리는 시집올 때 고양이를 데리고 왔었다.희고 긴 터럭과 파란눈의 인형과 같은 고양이였다.그러나 성깔이 있어 자기 주인외의 사람을 적대시했다.
큰아들은 애완동물을 싫어했다.어렸을 때 집에서 키우던 개에게과자를 먹이다 손가락을 물리는 바람에 그 후로는 어떤 애완동물도 마다했는데 둘이 자는 신방 침대에 고양이가 누워있는 것을 보고는 기겁을 하며 물었다.
『고양이하고 같이 잔단 말이오?』 『왜요? 지금까지 같이 데리고 잤어요.싫으시면 이제부턴 따로 재우지요.』 태연히 말하는며느리에게 아들은 섬뜩해서 되짚었다.
『지금까지 고양이하고 한 침대에서 지냈단 말이오?』 『네.그럼 안되나요?』 선선한 대답 끝에 그녀는 덧붙였다.
『뭘 질투하시는 거예요? 얘는 암컷이에요.수놈이 아니에요.』고양이도 고양이였으나 그 대답에 정나미 떨어졌다며 아들은 결혼한지 한참만에야 을희에게 실토했다.
『센스없는 여자구나,실망했습니다.자다가도 고양이에게만 신경쓰는 겁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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