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코아,아남제품 TV 출고가 밑도는 파격세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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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상품가격 결정을 놓고 메이커와 유통업체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불문율로 지켜져왔던 메이커의 출고가격및 소비자 권장가격을 유통업체가 아예 무시하고 값을 파격적으로 내려 소비자들에게 판매한 「항명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우 가격파괴가 가속화하는 과정에서 유통업체들이 메이커에 대해 『값을 얼마로 내려 납품하라』고 일방적 「명령」을 내리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메이커가 중요 유통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일이 처음으로 발생,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19~28일 실시된 뉴코아백화점의 가전제품 파격세일에서 비롯됐다.
뉴코아측은 파격할인 이미지 부각을 위해 아남전자의 29인치(CK2910) 화왕TV를 전략모델로 선정,소비자가격(79만8천원)보다 무려 17만8천원이나 싼 62만원에 팔았다.22.3%의 할인율을 적용,판매가격이 공장출고가(63만8천 4백원)를 밑돌게 된 것이다.
이 제품은 아남전자 전체 TV판매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최고의 인기 품목.통상 소비자가격보다 8만원정도 싼 71만8천원에 이 제품을 팔고 있던 전국 3백여 대리점에는 소비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일부는 물건을 갖고와 환불을 요구 하는등 일대혼란에 빠졌다.
아남전자는 당초 세일상품 상담과정에서 뉴코아측의 가격인하 요구에 불응해 이 모델을 공급하지 않았다.이와 함께 총판과 대리점에 공문을 보내 뉴코아계열 판매점에 이 제품을 팔지 못하도록「결사적인」가격방어에 나섰다.
이 모델은 할인점등에 밀려 갈수록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대리점을 살리기 위해 아남측이 정책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품목.
대부분의 29인치 TV가 1백20만원대 이상이지만 이 제품만은 70만원대로 책정돼 가격파괴시대에 대리점이 살아 남을 수 있도록 제한공급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뉴코아측은 총판및 용산전자상가등의 도매할인시장에서 현금을 동원해 물건을 대량 구입,아남전자에 일격을 가한 것이다.
현금 구입은 출고가에서 약 7%를 빼주기 때문에 59만~60만원선에 살 수 있다.뉴코아는 여기에 조달비용만 보 태 노마진으로 팔았다.
뉴코아는 백화점중 가장 많은 점포를 갖고 있는데다 킴스클럽까지 계열로 둔 초대형 바이어의 위치를 이용해 생산업체의 가격결정에 개입하려 했던 것이다.
싸움은 일단 세일기간에 국한됐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대리점.총판.도매할인시장등으로 유통경로가 분산돼 있는 우리나라시장의 구조적 특성때문에 현금만 동원하면 언제든지 생산업체가 짜놓은 가격체계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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