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가세는 정치 타협 대상물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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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야가 은행 외채에 대한 정부 지급보증 동의안을 조속하게 통과시키기로 합의한 것은 다행이다. 지금은 긴급대책을 동원하지 않으면 외환시장의 혼란을 진정시키기 어려운 현실이다. 미국 하원이 7000억 달러 구제금융법안을 부결한 것이 얼마나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했는가. 잘못된 정치논리로 인해 더 많은 자금과 시간이 소요되고 고통만 커졌을 뿐이다. 이번 여야의 전격적 합의는 시장에 안도감을 불어넣을 게 분명하다. 국제신용평가회사들도 국내 은행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야가 반대급부로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고강도 대책을 정부에 요구한 것은 잘한 일이다. 곤경에 빠진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도 맞는 방향이다. 문제는 합의 과정에서 몇 가지 전제조건들이 잘못 교환됐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의 부가세 인하 요구를 다른 감세안과 동일선상에 놓고 논의키로 했다”고 말했다. 야당이 강만수 경제팀의 교체 요구를 접는 대신 부가가치세 30% 인하라는 불씨를 되살린 것이다.

하지만 부가세는 함부로 손대면 안 되는 민감한 사안이다. 여야가 정치적으로 담합하면 쉽게 내릴지는 모른다. 그러나 다시 올리기는 불가능하다. 무턱대고 부가세를 움직였다가 정권이 붕괴된 경우는 수두룩하다. 또 부가세를 30% 내린다면 12조원의 세수가 날아간다. 그 공백을 메우려면 매년 적자 국채를 엄청나게 찍어댈 수밖에 없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면 부가세는 정치적 흥정 대상이 아니다. 차라리 경제팀을 퇴진시키거나 경제상황에 탄력적인 다른 세금을 내리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다.

앞으로 세계경제의 혼란은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정부와 여야가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할 위기상황이 자주 등장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야당은 경제위기를 고리 삼아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 운명을 떠맡은 여당은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 가랑비를 피한다고 집의 기둥뿌리까지 뽑아선 안 된다. 세계 각국은 지금 서로의 위기극복 과정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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