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스트레인지 데이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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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폭풍속으로』『블루 스틸』등 잔혹하면서도 감각적인 액션물을 만들어온 여성감독 캐서린 비글로가 전남편이자 『터미네이터』의 감독인 제임스 카메론과 손잡고 만든 『스트레인지 데이즈』(사진)가 11월2일 개봉된다.
감각파 감독의 작품답게 음울함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색조,빠른 화면과 쿵쾅대는 음향이 요지경같이 관객을 빨아들인다.
『세기말을 맞은 현대사회의 병적 징후를 드러내는 누아르』라는 선전문구는 현란한 이미지와 스타일에 이내 묻혀버린 다.
무대는 1999년의 LA.이 도시는 영화제목처럼 그야말로 이상한 나날속에 갇혀있다.빈부격차와 인종갈등이 더욱 심해지고 거리에는 강도와 펑크족.사이비 종말론자들이 판친다.
사람들은 「스퀴드(오징어)」란 기계로 현실의 괴로움을 잊는데이것은 CD같은 자기디스크에 다른 사람의 경험을 기록한뒤 오징어같은 헬멧에 연결해 대리체험하는 것이다.전직경찰인 레니(랄프피네스)도 스퀴드에 중독돼 하루하루 사는 사람 중 하나.그는 옛 애인 페이스(줄리엣 루이스)의 디스크를 종일 틀어놓고 그녀의 이미지를 즐기는게 낙이다.
99년도 저물어가는 12월30일.레니는 페이스의 친구인 아이리스란 여자로부터 디스크 하나를 전해받는다.디스크에는 흑인들의우상인 랩스타 제리코가 경찰에 사살되는 장면이 들어있다.이 디스크가 공개되면 대번에 흑인폭동이 일어날 것을 알고 대경실색한레니는 경찰시절 친구인 맥스,여자친구 메이시와 함께 사건의 전모를 찾아나선다.영화는 이때부터 문제의 디스크를 둘러싸고 주인공들과 경찰,그리고 진짜 범인이 벌이는 끔찍한 폭력과 음모.배신을 MTV 뮤직비디오풍의 파노라 마로 펼쳐낸다.
이렇게 영화를 보다보면 어느새 영화 자체가 일종의 스퀴드이고관객은 거기에 중독된 등장인물과 동일한 존재가 돼버린다.그럼으로써 감독은 현란의 극치를 달리는 자신의 영화가 실은 2시간짜리 싸구려 대리체험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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