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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같은 분쟁지 취재 연수] 모의 反軍이 납치 후 주먹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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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연수에 참가한 기자들이 인질 실습을 하고 있다. 예고없이 납치한 이후 복면을 씌우고 무차별 구타를 하는 등 실제와 거의 흡사한 상황에서 진행됐다. [한국언론재단 제공]

중앙일보 스포츠부 최준호 기자가 한국언론재단에서 국내 언론 사상 처음 마련한 분쟁지역 취재를 위한 연수를 다녀왔다. 영국의 사설 연수기관 센추리언 리스크 어세스먼트 서비스와 로이터재단이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세계 언론인과 비정부기구(NGO)를 위해 운영하는 과정이다. 지난달 26일부터 12일간 영국 런던 근교 헥필드 등지에서 진행된 연수 참가기를 싣는다.

"탕-탕!"

승합차를 타고 한적한 유럽 시골길 건물 모퉁이를 도는 순간 갑자기 총소리와 함께 검은 복면을 쓴 무장 반군들이 나타났다.

"내려(get off)!""빨리 빨리(hurry up, hurry up!)"

총부리를 앞세운 그들은 거칠게 차 문을 연 뒤 우리 일행을 인정사정없이 끌어내렸다. 놀란 가슴을 진정할 겨를도 없이 얼굴에 복면을 씌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들의 거친 목소리와 우악스러운 손놀림이 공포감을 더했다. 끈으로 양손을 뒤로 묶인 채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 어디론가 끌려갔다. 제대로 걷지 못하자 총부리와 주먹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우리 일행을 풀밭에 누인 뒤 소지품을 몽땅 빼앗았다. 주머니에 든 지갑에서부터 몸에 걸친 액세서리까지. 허리띠는 풀어 두 다리를 묶었다. 복면을 쓰고 사지가 묶인 채 땡볕에서 10분 넘게 미동도 못하고 누워 있자니 숨이 막혀왔다.

'명색이 연수인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화가 났다. '당장 그만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왔다. 이들은 우리를 어디론가 다시 끌고 간 뒤에서야 복면을 풀어줬다.

연수 둘째날인 지난달 27일 영국 런던 근교 연수센터에서 겪은 모의납치 상황이다. 인질로 잡혔을 때 공연히 움직이거나 불필요한 말로 납치범들을 자극해선 안 된다는 등의 수칙과 대처방법을 체험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연수과정은 내내 이렇게 실제상황에 버금가는 살벌한 경험과 극복 훈련의 연속이었다.

넷째날 비상구급법을 위한 실습. 영화 FX에서나 본 특수효과 장비와 분장이 준비됐다.

"콰쾅-! 으윽." 교육생인 기자 일행이 지뢰밭으로 다가가자 갑자기 지뢰 폭발음이 귀를 찢는다. 지뢰 제거 작업 중이던 군인들이 다쳤다. 한명은 오른 손목이 날아갔다. 실제처럼 분장한 특수효과다. 그는 손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기자 일행에게 뿌리며 "도와줘(Help me!)"라고 소리친다.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경우는 동맥절단이다. 겨드랑이 아래 대동맥 부위를 압박해 지혈해야 한다. 하지만 얼굴에 뿌려진 끈끈한 피에 당황한 기자들은 방금 교실에서 배운 방법도 잊어버렸다. 잘린 손목을 감싸기 바빴다. 지뢰밭 언저리에 떨어진 손을 깨끗이 처리해 가져와야 한다는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응급치료가 늦은 부상자들은 이미 죽었다. 더 빨리, 정확히!"조교들의 질책이 이어졌다.

피바다가 된 아수라장에서의 응급처치 모의 실습은 교육생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여기저기서 몇 차례 반복됐다. 총에 맞아 창자가 튀어나온 부상자의 치료, 물에 빠진 사람의 인공호흡…. 온몸이 파김치가 되는 날도 많았다.

정부군 검문소와 반군 검문소를 통과할 때의 요령도 실습했다. 정부군 쪽에는 반군 지도자를 취재하러 온 것이 아님을 믿게 해야 했다. 검문자에게 뇌물도 줬고, 거짓말도 둘러댔다. 실제 상황에서 스파이로 의심받으면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다. 거짓말도 앞뒤가 맞도록 잘 꾸며내야 생명을 부지하고 취재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실제로 지구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꽝-!"하고 박격포탄이 떨어졌거나 수류탄이 주위에 터졌을 때는 곧바로 반대방향을 향해 바닥에 엎드려야 했다. 그리고 귀를 막고 입을 크게 벌린다. 도망가려다가는 어느 파편에건 맞아 죽거나 다치게 된다.

이 밖에 ▶교전현장에 갇혔을 때의 피신요령▶저격수를 피해가는 방법▶지뢰 탐침 요령▶독도법 등 위험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상황과 생존방법 등도 실감나게 경험하면서 12일이 후딱 지나갔다.

헥필드=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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