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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칼럼

오바마와 매케인이 놓치고 있는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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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버락 오바마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과거 3년 동안 시카고 남단 빈민촌에서 봉사단을 이끌어 왔다. 그래서 미국의 빈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세계 최고 부자 나라인 미국 인구(3억 명)의 10%가 넘는 3700만 명이 빈곤에 시달린다. 유럽의 부국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빈곤층을 위한 대책은 회피한 채 중산층을 위한 감세정책에만 초점을 맞춰 왔다. 빈민 구제책을 아예 마련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그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빈곤’을 입력하면 최저임금 인상부터 조기교육·범죄예방을 통한 빈민촌 개선안이 일목요연하게 뜰 것이다. 반면 존 매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웹사이트엔 ‘우주 개발 계획’은 있어도 ‘빈곤’이란 단어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오바마는 빈곤 문제에 관한 한 경험 면에서나 정책 면에서나 매케인을 훨씬 앞서 있다. 그런데 왜 이 중요한 이슈에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가? 아마 빈곤층의 표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일 수도, 이들은 어쨌거나 민주당 후보에 투표할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참모들이 “무당파 성향 중산층을 위한 대책을 내놓는 게 빈민층 대책보다 선거에 더 효과적”이란 조언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미국의 빈민들조차 오바마의 주관심사가 아니라면 미국 밖의 빈민은 그야말로 보이지도 않는 존재일 것이다. 한데 오바마의 성장과정은 이 두 계층에 모두 적용된다(그의 아버지는 케냐 출신이고, 그는 어린 시절 빈곤에 시달렸다).

오바마는 2012년까지 대외원조를 500억 달러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실패 국가들이 안정되도록 돕고, 아프리카의 경제성장을 견인하겠다는 목표도 설정했다. 잘한 일이다. 현재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민총생산 대비 대외원조가 미국보다 적은 나라는 그리스뿐이다. 그러나 러닝메이트인 조 바이든 후보는 “금융위기 구제를 위해 7000억 달러를 쓸 경우 대신 줄여야 할 예산은 뭐냐”는 TV토론 질문에 “대외원조”라고 답했다. 매케인은 아예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대외지원 액수조차 밝힌 적이 없다.

오바마와 매케인 모두 이라크에서 전사한 미군의 희생을 강조한다. 하지만 훨씬 많은 현지 주민들이 숨진 데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세라 페일린 공화당 부통령 후보는 TV토론에서 “오바마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하는 일이라곤 민간 거주지 폭격과 주민 살해뿐’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미군은 테러리스트들과 싸우며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놀라운 건 페일린이 미군 공습으로 숨진 죄없는 민간인에 대해 단 한마디의 위로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지난 8월 50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주민 95명이 숨진 미군의 공습을 되풀이 거론하며 격분한 바 있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부각되는 지구촌 차원의 문제는 기후변화다. 오바마와 매케인 모두 이 문제에 대해선 사실상 같은 답을 내놓고 있다. 205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효과를 급감시킨다는 게 골자다. 오바마는 온실가스를 현재 수준의 80%, 매케인은 65%까지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길어봤자 2016년까지 백악관에 머물 수 있는 터에 이런 수치나, 서로 간의 차이는 무의미하다.

이번 대선에서 흥미로운 건 두 후보 모두 손을 놨던 이슈가 정작 유권자들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페일린이 알래스카 주지사 시절 경비행기를 이용한 늑대 사냥을 지지한 사실을 부각한 환경단체 ‘야생의 수호자들’의 광고는 오바마에게 지지자가 몰리는 효과를 냈다. 이 단체의 회장 글렌 케슬러에 따르면 “두 후보 측이 수없이 쏟아낸 선거광고들이 별 효과를 내지 못한 반면 이 광고는 지난 한 달 동안 오바마에게 돌파구를 열어준 가장 힘있는 메시지였다”고 한다. 틀 밖에서 생각하는 슬기를 가질 때다.

피터 싱어 미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교수
정리=강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