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아그라의 진화’ 어디까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건양대병원 윤치순 교수는 흉부외과 전문의다. 하지만 그에게 비아그라는 ‘필수 의약품’이 됐다. 폐동맥 고혈압환자를 치료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기 때문. “비아그라의 주성분인 실데나필이 혈관의 평활근을 이완시켜 혈액순환을 돕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에선 6개월 만에 태어난 미숙아에게 비아그라를 사용해 생명을 구한 것이 화제가 됐다. 폐동맥 고혈압으로 혈압이 높아져 사지를 헤매던 신생아에게 비아그라가 ‘수호 천사’가 된 것이다. 이런 효과를 인정받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05년 6월 실데나필을 폐동맥 고혈압 치료에 이용하도록 승인했다. (국내에도 지난 5월 레바티오로 승인)

높은 산을 등반하는 산악인에게도 비아그라는 필수품이 될 전망이다. 2005년 ‘미국 호흡기 및 중환자 학회지’는 비아그라가 고산에서 나타나는 저산소증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을 실었다. 4350m의 높이에서 6일 동안 실데나필군 6명과 가짜약군 6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실데나필 투여군이 폐동맥의 혈압을 내려주고, 혈액 내 산소결핍을 해소해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아그라는 해외 여행시 나타나는 시차 극복에도 도움을 준다. 아르헨티나 국립대 연구진은 최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비아그라를 투여한 쥐가 그렇지 않은 쥐에 비해 시차 부적응 현상을 빠르게 극복했다고 보고했다.

불임 여성에도 쓰일 전망이다. 비아그라가 혈액 공급을 늘려 자궁내막의 두께를 늘려준다는 것이 이론의 배경. 자궁내막이 얇아 태아가 착상 또는 성장하기 어려운 여성에게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희귀병인 레이노병에도 효과적으로 쓰인다. 레이노병은 춥거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혈관이 과도하게 수축돼 손이 파랗게 변하는 질환. 2005년 독일 가타드-쉐틀러 병원의 로날드 프라이 박사팀은 기존 약품으로 치료에 실패한 환자 18명을 대상으로 비아그라를 투여한 결과 레이노 증상의 발생 빈도를 줄였다고 발표했다.

무엇보다 비아그라는 심장 관련 질환에 두루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써큘레이션(순환)’이라는 학술잡지에는 비아그라가 항암제로 인한 심장손상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게재됐다. 항암제의 독성에 의해 심장세포가 망가지는 것을 막아 심근비대의 진행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또 비아그라는 고혈압에 의해 심근이 비대해지는 것도 예방한다.

비아그라는 뇌졸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과거 비아그라 등 발기부전 치료제가 세포 내 PDE5라는 효소를 억제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분석을 실시한 퀸스 대학 연구팀은 비아그라가 혈관의 혈전(피떡)생성을 막아 뇌졸중과 심장마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여성에게도 비아그라가 효과를 발휘했다. 항우울제의 부작용 중 하나는 성욕 감퇴. 미국 뉴멕시코대 의대 정신과 조지 넌벅 교수는 임상실험을 통해 실데나필이 세로토닌 항우울제를 복용할 때 나타나는 성적 부작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음을 입증했다.

비아그라를 먹으면 기억력이 좋아지고 학습 효과가 높아진다는 연구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원리는 분명하지 않지만 비아그라가 뇌 기능에 연료 역할을 하는 혈당의 효율을 높인다는 설이다. 이런 가설을 바탕으로 비아그라가 치매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고종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