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진실 규명과 遺志 계승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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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49년 안두희(安斗熙)는 백범(白凡)김구(金九)를 암살했다.1996년 안두희는 「정의봉(正義棒)」에 맞아 죽었다.
테러리스트가 47년후 테러에 의해 죽은 것을 두고 항간에는 「민족 정기의 응징」 「역사의 업보」 「역사의 필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물론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은 아니다.백범의 죽음이 가져온 민족사적 손실,암살사건의 굴욕적인 은폐과정,안두희가 그간 보여온 거짓의 엄연한 행보,카멜레온식의 증언과 우롱등은 안두희 죽음으로 보상할 수 없는 분명한 질량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정의봉에 의한 안두희의 피살은 박수칠 수만 없는 유감스럽고 아쉬운 것이다.백범 암살은 거대한 권력구조의 산물이고 안두희는 그것의 한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안두희가 역사와 진리의 편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할 때 우리는 역사의 한 단락을 마무리하는 심정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을 것이다.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그간의 끊임없는 손가락질과 습격으로 안두희는 이미벌을 받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백범의 손자 김진(金振)의 언급은 참으로 도량있는 지적이다.
그런데 이번 피살사건에 대한 반응에서 필자를 진정 우려케 하는 것은 이른바 각계의 반응에 깔려 있는 몇가지 「암초」들이다.그것은 다름 아닌 안두희의 죽음으로 백범 암살사건이 영구 미제(未濟)사건이 될 수 있다는 아쉬움이다.아쉬움에 암초가 깔려있다고 한 것은 마치 안두희가 백범 암살사건의 모든 것을 감당하며 백범과 이상한 대응관계의 한 짝을 이룰 수 있다는 시각이깔려있기 때문이다.
물론 백범 암살사건에서 암살범 안두희가 차지하는 위치는 막중하다.그런데 비록 진실과 거짓으로 뒤범벅돼 있기는 하지만 안두희는 자신이 알고 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이미 거의 다 언급했다.특히 김석용(金奭鏞)의 설득에 의해 남긴 증언테이프 1백21개는 그의 증언 중에서 가장 진실되며,언급하고 있는 내용도 생생하고 포괄적이다.『弑逆의 苦憫』이 김창룡(金昌龍)등의 작품이라는 점,월남 직후 서북청년단 가입과정과 경찰수뇌부의 도움,정보장교 김창룡과의 만남,암살기■ 자 김지웅(金志雄)의 접근과정과 한독당의 양근환(梁槿煥)을 백범 암살의 미끼로 던진 것,장은산(張銀山)의 구체적인 암살 명령,암살사건후 김창룡의 후대와 호텔같은 감방생활,암살사건에 국가기관의 개입을 확신하는안두희의 고백,한국전쟁 직후 국방장관 신성모(申性模)의 금전제공등을 너무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즉 안두희가 남긴 증언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선 과잉된 것이었다.즉 그간 언론이나 관련자들이 지나치게 안두희에게 초점을 맞춤으로 해서 안두희의 지위는 과도하게 격상됐다.백범 암살사건에 진정 중요한 것은 오히려 「안두 희 이외」다.백범 암살당시 안두희가 구조의 한 부속품이었다는데 동의한다면암살사건의 규명은 부속품과 더불어 구조의 전반적 노력이 필요한것이다.안두희의 증언에서 언급된 관련기관들은 이제 진정성을 갖고 그의 증언에 대답하고,관련자료의 흔적을 조사해 개방해야 할것이다.다시 말하지만 안두희의 죽음으로 백범 암살사건이 미제사건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백범 암살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배후를 밝히는 것에 그쳐선 안된다.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백범의 유지를 올바르게 계승하고 실천하는 것이다.백범이 친일파와 분단체제에 의해 희생됐으며,그가 무덤으로 가져간 민족주의의 최종 요체가 「 자주적 통일독립」이란 사실을 먼저 직시하자.그렇다면 남북의 진정한 화해를통해 격변기 민족의 이해를 도모하고 통일을 앞당기는 것,이것이야말로 백범과 안두희라는 이상한 대응관계를 해체시키고 백범의 죽음에 대한 진정한 해원(解寃)이 될 것이다.안두희의 피살은 백범이 살아나는,그의 유지를 올바로 계승하는 하나의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都珍淳<창원대교수.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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