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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중국 최고의 수재들은 어떤 고민을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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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北大日記
(베이징대학생 일기)

주자슝 엮음, 베이징(2008년)
281쪽, 24위안

1898년에 개교한 베이징(北京)대학은 올해로 11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베이징대학에 합격한 학생은 과거 시험에 급제해 진사(進士)가 된 것처럼 존중받는다. 중국의 미래를 가늠하려면 베이징대학을 보라는 말도 있다. 이런 베이징대 학생들은 어떻게 학창시절을 보낼까.

『베이징대학 일기』는 그런 궁금증에 대한 실마리를 엿보게 해주는 책이다. 중국 최고의 두뇌로 평가받는 베이징대학생 25명이 실명 또는 필명으로 쓴 일기를 한 데 모았기 때문이다.

일기의 주인공들은 2008년 현재 재학중인 ‘바링허우(八零後:1980~89년생)세대’ 뿐 아니라 19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의 학창시절 일기도 포함됐다. 몇 가지 키워드로 나눠 이들의 일기를 들춰보자.

◆생일=오늘은 19세 생일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12년간 나는 베이징대학을 꿈꿔왔다. 이제 19세의 찬란한 청춘을 맞았다. 생일 촛불이 빛나고 빗소리가 들린다. 부모님의 눈물도 있다. 나의 꿈이 있고 나의 베이징 대학이 있다.

◆인생=산 하나를 넘는다는 것은 또 다른 산 기슭에 도착한 것을 의미한다. 인생은 길이다. 길은 멀고 사람들은 외로움을 싫어한다. 허전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과학·문학·예술·철학 그리고 사랑을 만들어 냈다.

◆사랑=칠월칠석이 지났다. 사랑이 뭔지 모르지만 드라마처럼 낭만적인 일이 생겼으면 하는 환상이 있다. 어느 날 내가 책을 들고 캠퍼스를 걷다가 멋진 오빠와 부딪친다.내가 땅에 넘어지고 멋진 오빠가 나를 부축하는 사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사랑이 시작될 것이다. 촌티나고 우습다.

◆행복과 고통=오늘 우연히 이런 말을 들었다. 행복은 아주 가볍기 때문에 천국이 하늘 위에 있고, 고통은 너무 무거워서 지옥이 땅속에 있다고. 중생들은 행복과 고통의 언저리를 떠돈다. 팽팽한 저울추 한쪽에는 행복을, 다른 한쪽에는 고통을 달고 있는 듯하다. 행복은 멀어 보이고 고통은 손에 닿을 듯하다.

◆여자의 일생=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좋은 남자는 여자의 일생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여자 스스로 강해지고,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 일어서는 것이다. 처음으로 나는 내가 부모의 양 날개 밑에 있는 새가 아니라고 느꼈다. 남자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지고 집안 형편을 바꾸고 부모를 구하고 내 운명을 바꿔야 한다.

◆군사훈련=우리 반 남학생에게 생리대를 사주기 위해 할인매장에 갔다. 대학생 군사훈련에 참가하는 남학생들이 군화 바닥에 깔도록 하기 위해서다. 좀 전에 교내 슈퍼마켓에도 들렀다. 남학생들이 생리대 매장 주위를 서성대더니 잽싸게 물건을 사들고 총총 사라졌다. 정말 재밌다.

◆졸업=오늘 (학칙에 따라) 학생증을 가위로 잘랐다. 그런 뒤에 졸업증과 학위증을 받았다. 교무담당이 학생증을 자를 때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일부만 자르라고 부탁했지만 싹둑 잘라버렸다. 이렇게 잔혹하게 잘라야 하나. 나는 이제 더 이상 베이징대 학생이 아니다.

◆자문자답=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없음. 가장 위대한 성취는? 살아남은 것. 가장 아끼는 재산은? 나 자신. 가장 사치하고 있는 것은? 자유. 가장 약한 고통은? 죽음. 지나치게 고평가된 미덕은? 겸손. 가장 좋아하는 직업은? 프리랜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난 몰라요. 가장 갖고 싶은 재주는? 하늘을 나는 마술. 가장 사랑하는 것은? 나 자신.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주자슝(朱家雄)=후난(湖南)성에서 태어났다. 작가·시인·평론가로 활동중이다. 1993년 이후 1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2004년 장편소설 『캠퍼스의 얼짱들(校花們)』을 출간했다. 『베이징대학 러브스토리(北大情事)』등 대학을 배경으로 한 10여 편의 캠퍼스 문학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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