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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신종전염병 '승리주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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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전염병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역사적 질병」이다.한때 무서운병이었던 결핵은 이제 주변적인 병이 돼버린 반면 에이즈와 같은신종 전염병이 생겨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이와 관련,주목할만한 우리 사회의 신종 전염병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정치권의 신종 전염병인 「승리 이데올로기」다.원래 이 말은 우리사회의 「반(反)김대중(金大中)현상」과 호남차별문제를선정주의로 상업화해 화제가 됐던 한 언론평론가가 후속저작인 『김영삼(金泳三)대통령론』에서 金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요약한 표현으로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이기고 보자」는 정치이념을 말한다.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군부독재가 남겨놓은 병폐인 「성과제일주의」를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 다는 문제는 있지만 지고는못배기는 대통령의 강한 승부욕(勝負慾)을 상징한 그럴듯한 개념이다. 정작 문제는 승리 이데올로기가 金대통령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염력을 가지고 전파돼 김대중총재 역시 이에 감염되었다는 점이다.특히 특이한 것은 다른 전염병과 달리 이 병은 그냥옮겨진 것이 아니라 金총재가 대권 4수(修)를 위해 자발적으로감염당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정계복귀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金총재의 감염 증후군은 사방에서 찾아볼 수 있다.중산층을 잡는다는 이름하에 진행되고 있는 「보수화.수구화(守舊化)」경쟁,개발독재의 경제 성장제일주의를 연상케하는 경제제일주의,색깔론의 최 대피해자로서신한국당 영입 재야인사들에 대해 제기한 색깔론등 그 예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이같은 증후군의 결정판은 「정치는 악마와도 손을 잡는것」이라는 이름하에 金총재가 추진하고 있는 유신,5.6공세력과의 연대와 호남.충청.경북을 묶는 「역(逆)지역연합」론이다.이는 金총재가 그동안 비판해온 金대통령의 3당통합 을 그 강도(强度)만 낮춰 그대로 복사한 「역 승리 이데올로기」다.결국 金총재가 과거에 그런대로 지켜온 원칙을 버리고 「이기고 보자」는승리 이데올로기의 신자로 변신한 셈이다.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현실정치에서의 평가」와 후세의 「역사적 평가」가 있다.金총재는 잘 알려져 있듯 지역주의.용공조작등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세차례의 대선이라는 현실정치의 평가에서 패배했다.그러나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70년대 이후 군부독재에 가장 철저하게 저항해온 민주투사로서 한국정치사에 있어 역사의 평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정치인중 한명이었다.
그러나 승리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최근의 그의 행각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현실에서 지고 역사적 평가에서도 패배하는,정말 불운한 정치인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즉 그의 최근 행각이 역사적 평가는 어찌됐든 현실정치에 서 이기고 보자는 입장으로 변화했지만 이같은 변신이 현실정치에서의 승리로귀결되지 못하고 현실과 역사 둘 다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는것이다. 물론 신한국당 대권경쟁의 결과는 알 수 없고,또 그 결과에 따라 일부 낙선자의 탈당 가능성이 남아있는등 아직 변수는 많다.그러나 金총재의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자민련과의 지역연합은 현실적으로 장애가 너무 많다.
게다가 설사 이같은 연합이 성사돼 金총재가 단일후보로 나서더라도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침투한 지역주의등에 대권 4수에 대한거부감까지 더해져 상층부연합이 경북과 충청권 유권자들의 표를 지지표로 이끌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에서 이기지도 못하면서 그나마 어렵게 벌어놓은 역사적 평가마저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金총재의 변신이 「비난은 순간이고 승리와 대권은 영원하다」는입장으로 정치철학이 바뀐 것이기 때문인지 모른다.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긴 호흡의 역사에서 바라다볼 때 「대권은 순간이고 역사는 영원하다」는 사실이다.金총재가 누차 강조해온 개인적인 신조처럼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金총재의 지혜로운 결단이 필요하다.
본란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손호철 서강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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