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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한국의역군들>14.포항공대 화학과 한종훈 교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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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여기저기 널린 IC칩과 인쇄회로기판(PCB),복잡하게 얽힌 전선,드라이버와 플라이어등 공구,카메라와 현미경.레이저 발사기등 각종 광학기기.
전자공학 실습실을 연상케하는 포항공대 공학관 4동 레이저 생의학연구실 풍경이다.
이 공간의 주인은 한종훈(韓宗勳.40.화학과)교수.
『이걸 화학이라고 해야 할지 광학이라 해야 할지,아니면 전자공학이라고 해야 할지 제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 韓교수는기계를 만들고 있다.통념상의 화학과는 거리가 있는 작업.
중요한 건 깐깐하기로 소문난 포항공대당국이 이 프로젝트에 이미 2억원 가까운 돈을 대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DNA의 염기서열을 신속히 결정하는데 쓰일 기계입니다.』 생명체에 들어있는 유전물질인 DNA의 염기서열을 분리,그 구조를 풀어내는 기기의 개발이 목표.
『미국의 에너지부와 국립보건원(NIH)이 야심적으로 추진하고있는 인체 게놈프로젝트도 따지고 보면 염기서열의 결정을 얼마나빨리 해내느냐에 있습니다.생화학.분자생물학.유전공학등에 종사하는 학자들이 DNA염기서열을 신속히 파악할 수 있도록 「눈」을만들어 주는 것이 제 역할이지요.』 인체 게놈 프로젝트는 지난90년부터 2005년까지 30여억개에 이르는 인체 DNA 염기서열을 모두 풀어 인간의 유전질환에 대한 진단과 치료의 길을 열고 인체의 생명현상을 풀어내겠다는 계획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현재 사용되는 맥섬-길버트법이나 생어법으로는 1백~1천년이라는 요원한 세월과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韓교수는 미량의 시료로 신속하게 DNA구조를 알아내기 위해 모세관 겔 전기영동법에 레이저를 이용한 형광 검출법을 개발했다. 지난해부터 연구에 착수해 1단계 완성한 시작품의 경우 약 6백일 정도에 염기서열을 결정할 수 있다.엄청난 진전이지만 효율적인 인체 게놈 연구엔 아직도 무리다.
韓교수는 이번엔 단일분자 형광검출법을 써서 염기서열 결정 기간을 10~1백일로 단축하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일견 황당해 보이는 시도지만 이것이 완성되면 DNA연구에 획기적인 도약이 이뤄질 것이다.
화학도로서 그의 기행(奇行)은 오래전 시작됐다.
부산대 화학과와 한국과학기술원을 나와 88년 미 스탠퍼드대에서 「2단계 레이저 질량분석법」으로 박사학위를 딴 것.이 기법은 최근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화성운석의 생명체규명작업에 쓰이기도 했다.
일욕심이 많은 韓교수는 DNA염기서열 결정기법 외에 질량분석법과 비선형 광학기법을 이용한 단백질 구조 연구도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다.
어깨너머로 배운 전자공학이 웬만큼은 된다는 자가발전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의 서가엔 전자기학.전자역학등의 서적이 즐비하다.
어두운 환경에서 진행해야 하는 일의 성격상 일몰후부터 본격적인 연구를 하다보니 자신을 포함한 학생들 모두가 「포항올빼미」가 돼버렸다며 껄껄 웃는 韓교수는 『점점 더 어려운 기법에 도전하면서 심신에 가해지는 고통이 클수록 쾌감 또한 강렬하다』고고백한다.
포항=윤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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