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이 공연] 그는 왜 판때기를 2억8000만원에 샀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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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그림을 샀다. 현대미술의 거장 앙트로와의 작품이란다. 그런데 그 그림이란 게 하얀 바탕에 하얀 색 줄이 그어져 있을 뿐이다. 가격은 무려 2억8000만원. 나도 모르게 터지는 소리, “이런 하얀 판때기를 그 돈을 주고 샀단 말이야?!”

그렇다. 세상에는 ‘이런 하얀 판때기’를 2억8000만원씩 주고 사는 사람이 있다. 대형 수조에 집어넣은 송아지(데미안 허스트 ‘황금 송아지’)를 215억원에 사들이는 사람도 있는데 그쯤이야. 그게 ‘아트’라는데, 타인의 취향이라는데 어쩔 것인가. 그런데도 친구가 마뜩찮은 건 단지 취향이 달라서일까?

대학로의 스테디셀러 연극 ‘아트’가 되돌아왔다. 2003년 초연 이래 대학로에서만 10번째 무대다. ‘원조 아트 배우’라 할 정보석·이남희·정원중(이상 화·목·토 공연)·권해효·이대연·조희봉(이상 수·금·일 공연)이 우정과 의리 뒤에 감춰진 남자들의 쫀쫀한 속살을 보여준다. 수·금·일 팀의 조희봉은 ‘게이’ 느낌마저 풍기는, 예사롭지 않은 수현을 보여준다.

취향의 차이가 웃음으로 비화되는 건 실은 그게 권력의 문제라서다. 친구의 남다른 안목을 인정할 수 없는 속사정을 파고드니 세월의 흐름 속에 변화한 힘의 불균형이 보인다. 타인과의 소통 가능성을 예리하게 질문하는 이 고급스러운 코미디극에서, 달라진 것은 극중 그림 값. 급팽창 중인 한국 미술시장을 감안해 1억8000만원에서 2억8000만원으로 바꿨다.

극에 사용된 소품은 가로·세로 1m20cm 유화 캔버스에 하얀 페인트칠만 했다고. 11월 30일까지 대학로 SM아트홀. 02-764-8760.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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