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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크 이후 중국 경제 현장을 가다] 중국 곳곳서 이미 거품 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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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 8일 중국 동부 연안의 경제 도시 칭다오(靑島).

한국.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금융시장이 '중국 쇼크'로 휘청거린 지난달 30일 직후 시작된 7일간의 노동절(勞動節) 휴가가 끝나 시민들이 속속 일상생활에 복귀하는 모습이었다.

국유 은행과 민간 상업은행 등 20여개의 금융회사 지점이 모여 있는 샹강중루(香港中路)는 전국 각지에서 '황금연휴주간(golden week)'을 보내기 위해 몰려왔던 외지의 관광객들이 빠져나가 평온을 되찾았다.

이곳의 은행 지점들은 현금을 인출하고 예금을 찾으려는 개인 고객들이 간간이 방문할 뿐 한산했다. 광다(廣大)은행 창구에서 만난 40대 여성 리밍은 "연휴 기간에 가족끼리 여행을 갔다온 뒤 현금을 찾으러 은행에 잠깐 들렀다"고 말했다.

중국 최대의 국유 상업은행인 궁상(工商)은행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지난달 29일 과열 억제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뒤 중국 경제에 심상찮은 변화가 없느냐는 질문에 궁상은행 칭다오 본부 자우훙웨이(38)총경리는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우리 회사는 이미 지난해 초부터 철강.시민트.부동산 등 몇몇 업종에 대해 과열을 진정시키라는 당국의 주문에 따라 대출을 조절해왔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의 중국 내 자회사인 칭다오국제은행 정성재 행장은 "부동산 등 일부 업종에서 자원 낭비를 초래하는 중복 투자가 성행한 게 사실"이라며 "1990년대 초반 경제성장률이 연 14%까지 치솟았을 때 주룽지(朱鎔基) 당시 총리가 경기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실시했던 '거시(宏觀)조절정책'이 溫총리에 의해 '열내리기(降溫)정책'으로 이름이 바뀌어 부활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외부 세계는 '중국 쇼크'로 요동쳤지만 정작 중국 내부는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이미 지난해 11월께 4대 국유 상업은행과 11개 주식제 상업은행, 도시은행 등 전국의 주요 금융회사에 공문을 보내 부동산.철강 등 과열 업종에 대한 대출을 자제하도록 주문했기 때문에 한마디로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는 것이다.

지난 2월에는 溫총리가 주재한 '금융 공작(업무)회의'에서 금융회사의 과열 업종 대출 관리 방침을 추가로 마련했고, 지난 3월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도 거시경제 조절을 경제정책의 방향으로 채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이 평온을 유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보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 지도자들에 대한 국민의 강한 신뢰가 깔려 있다.

한 국유 상업은행의 간부 L씨는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도 중국 정부는 정확한 대응으로 위기를 맞지 않았고,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발생했을 때도 비교적 조기에 잘 대처했다"며 "일부 과열현상이 있지만 지도자들이 지난해부터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내 A은행의 중국 지점 관계자는 "중국 현지의 분위기는 담담한데 한국과 미국의 금융시장은 너무 과민반응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이미 시행해온 정책이더라도 총리가 새삼 긴축을 화두로 들고 나온 만큼 정책의 미묘한 변화가 갖는 의미를 새기고, 기업별로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베이징현대자동차 이강동 이사는 "총리가 직접 과열억제를 강조한 만큼 신규 투자 허가나 현재 진행 중인 허가 절차는 중단되거나 축소될 수도 있다"며 "이미 2002년 9월에 10만대 설비 증설을 마치고 올해부터 생산에 들어간 현대자동차는 중국 내수 시장에서 반사이익을 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산둥(山東)성 르자오(日照)시에서 시멘트를 생산.수출하는 대우시민트 김영준 부장은 "수출 여건은 좋아지겠지만 설비투자 확대가 어려워지면 규모가 큰 중국의 국유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를 통제할 힘이 있는 중국 정부가 과열 억제 정책을 의식적으로 추진하는 만큼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는 점은 분명했다.

칭다오.베이징=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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