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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가정문화>15.시댁.처가와의 담 허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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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시」자 들어간 사람치고 편한 사람 하나 없다고 말들 하지만주부 임행옥(37.경기도고양시일산2동)씨는 친정부모보다 오히려시아버지.시어머니와 더 가깝게 지낸다.며느리를 「남의 자식」아닌 「내 자식」으로 감싸안아주시는 시부모의 열 린 마음에 그 비결이 있다는 게 임씨의 생각.
제사때면 기름 냄새에 질려 음식에 손도 못대는 며느리들을 데리고 나가 저녁을 사먹이시는 시아버지,아이들 키우느라 힘들거라며 아무리 말려도 철철이 손수 김치를 담가주시는 시어머니.『나이드신 분들께서 먼저 통념을 깨고 큰 사랑을 베푸 시니 고개가절로 숙여질 수밖에 없다』고 임씨는 털어놓는다.
세상이 변한 만큼 가족관계의 양상도 이처럼 몰라보게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에서 「시집갈등」은 커다란 불씨로 자리잡고 있다.오히려 시어머니는 이래야한다,며느리는 이래야한다는 식의 전통적 규범이 무너진 상황에서 각자의 기준으로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다보니 예전엔 없던 상처와 반목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여성의전화 정희진 차장은 『「남편과 결혼했지 남편의가족과 결혼한 게 아니다」며 시부모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신세대 며느리들,당연히 해야할 도리를 거부하는 젊은 며느리의 「반란」에 분노하는 시어머니들이 주된 상담자들』이라며 『생활패턴의 급격한 변화로 더욱 양극화하는 우리 사회내 세대간 인식차가 고부관계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한다.서로의 입장을고집하는데서 한발만 물러나 무슨 일이든 터놓고 대화하는 자세가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 적.무엇보다 결혼이후 형성된 가족관계는 혈연관계도,십수년 이상의 성장기를 함께 한 친숙한 사이도 아닌 만큼 이해와 사랑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인위적노력이 불가피하다는 사고방식을 갖춰야한다는 조언이다.
얼마전 시댁에서 분가한 박은정( 33.경기도광명시철산동)씨는방 3개중 하나를 시부모 기거용으로 따로 만들었다.『외아들을 내보내는 시부모 심정이 어떠셨겠어요.비록 따로 살지만 언제든 오셔서 편히 지내시게 이부자리며 갈아입으실 옷.TV등을 갖춘 방을 꾸며놓았죠.』비어있 는 날이 많은 만큼 공간활용에 아쉬움이 많지만 가끔 다녀가시는 시부모의 표정이 환해진 걸 떠올리면이 정도 배려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박씨의 생각이다.매끄러운관계를 맺기 위해 의도적 노력이 중요한건 비단 시부모.며느리간뿐만 아니 다.명절이며 제사등 집안 대소사 때마다 흔히 역할 분담으로 충돌을 빚는 동서들간의 문제를 한번 생각해보자.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저는 늦어서 못가니 돈만 보낼게요」라며 일방적으로 통보하는건 곤란하죠.최소한 행사 3~4일전에 동서들끼리 서로 만남이나 전화통화를 갖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해 의논하는 게 순서입니다.』 예컨대 직장여성이 값나가는 육류등 재료를 도맡아 사오겠다거나 설거지를 책임지겠다는 식으로 양해를 구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다른 일을 분담하도록 요청하는 게 현명하다고 예지원 강영숙 원장은 충고한다.
한편 결혼 이후엔 발길을 끊는 게 당연시되던 친정(처가)과의체감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딸과 친정부모,사위와 장인.장모관계 설정에 대한 지혜가 절실해진 것도 요즘 눈에 띄는 가족관계의 변화상. 『시집간 딸이 집 근처에 살면서 툭하면 당당히 아이를 맡기질 않나 냉장고속의 식료품을 아무 말없이 집어가지 않나 당황할 때가 많아요.』 딸을 자주 보니 서운함이 덜한건 사실이지만 함께 사는 며느리에게 미안한 것은 물론 친정이 편하다고 휴일이면 온식구가 집안을 점령하는 딸가족에게 화가 나기도한다는 게 김명숙(55.서울서초구방배동)씨의 말이다.
이화여대 이동원(사회학)교수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생활의 편리를 좇아 친정과 가까이 지내는 가정이 현저히 증가하는추세』라면서 『그럴수록 친정과 시댁 양쪽에 자녀로서의 예의를 깍듯이 갖추는 태도가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충고한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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