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한국,북한,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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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이 발생한지 벌써 한달이 돼간다.
그동안 한국은 북한의 도발행위를 용납할 수 없으며 대북(對北)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공언했고 북한은 오히려 한국을 『백배,천배의 섬멸적 타격으로 징벌할 것』이라고 위협했다.그러나실제로 남과 북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아직 예 측하기 어렵다.다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남북이 모두 미국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한국은 미국이 좀더 강하게 북한을 처벌하기를 원하고있고 북한은 미국을 한국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있다. 그러나 물론 미국은 남북한의 소원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다.남과 북은 미국의 실체에 대해 보다 냉철한 이해가 필요하다.
미국은 한국의 동맹국이다.그러나 어느 국가도 자선사업을 하기위해 동맹을 체결하는 것은 아니다.우리는 미국이 한국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지를 생각하기 전에 과연 미국에 긴요한 이익은뭣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은 핵확산을 방지해야 한다.핵무기의 확산은 기존세력균형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대북 핵협상을 담당했던 갈루치 전대사가 최근 어떤 세미나에서 미국은 북한 핵무기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무력공격을 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밝힌 것도 핵확산방지가 미국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준다.
둘째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자 한다.왜냐하면 전쟁이 발생하면 미국도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미국이 북한의 연착륙을 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미국의 세번째 목표는 미국이 동북아 세력균형을 유지하는데필요한 한국과의 협조관계를 안정화하는데 있다.즉 한국의 친미노선을 심화하는 것이 중요한 이익중의 하나다.
미국은 자신의 기본이익에 역행하는 선택은 거부한다.그러나 미국에도 고민은 있다.앞에서 지적한 기본이익들이 항상 일치하지는않기 때문이다.만일 한국이 진정으로 전쟁발생 확률이 큰데도 불구하고 대북제재를 강하게 요구한다면 미국은 고민 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이 전쟁 가능성이 높은 행동을 취하기를 원할 것인가 하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한국은 과연 대북정책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의 순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한국과 미국이 추구하는 이익사이에는 서 로 일치하는부분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바로 이러한 공통이익을 찾는 것이 한국 외교가 해야 할 일이다.
북한은 미국의 부드러운 표현방식을 오판해서는 안된다.「백배,천배」보복하겠다고 떠드는 북한과 달리 미국은 비교적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고 일단 상대방이 어떤 한계선을 넘으면 단호한 행동으로 대응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미국의 이러한 스타일을 잘못판단하고 진주만을 공격했던 일본,6.25남침을 감행했던 북한,쿠웨이트를 침공했던 사담 후세인 등은 모두 미국의 단호한 대응에 부닥쳤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미국이 대한(對韓)안보공약을 조용한 목소리로 확인했다고 해서 북한이 미국의 의지를 약한것으로 판단한다면 북한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북한은 미국과 한국을 분리시킬 수 있다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물론 한.미간에는 부분적으로 이익순위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므로 북한은 어느 정도까지는 한.미관계에 긴장을 조성할 수 있다.그러나 과거 북한이 중.소간의 긴장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본질적으로 중.소가 경쟁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깨달아야한다.한.미관계는 지정학적으로 경쟁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특히 경제적 이익과 민주적 가치관을 생각할 때 미국이 북한 때문에 한.미관계를 희생시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도 북한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잠수함사건에 대해 「모든 당사자」운운하는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곤란하다.물론 미 국무장관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현실적으로 우리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북한 내■ 의 강경세력을 견제하고 온건개방세력의 부상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도 북한의 도발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앞으로 한.미간의 협의는 바로 이런 전략적 차원에서 이뤄졌으면 한다.
김경원 사회과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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