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벨로.오르타 업적-對인도 비폭력 독립운동 전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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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카를로스 필리페 시메네스 벨로 주교와호세 라모스 오르타는 새 민족분규의 화약고로 떠오른 인도네시아동티모르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노력해온 독립운동가들이다.
벨로 주교는 인도네시아 정부군의 독립운동세력 체포와 인권탄압을 거세게 비판하면서도 폭력적인 해결방법에는 반대했다.
벨로는 수도 딜러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포르투갈 리스본대학과 로마 살레시안대학에 유학하고 83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동티모르 독립시위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되거나 실종된 사람의 리스트를 작성하며 정부측에 진상조사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시위대 1백명 이상이 숨진 지난 91년 무력진압에 대한 그의 조사 요구는 2명의 시위진압 장군들이 옷을 벗고 10여명의장교들이 실형을 선고받게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끊임없는 탄압과 감시를 받던 그는 89년 유엔에 동티모르 문제에 관한 국민투표 시행을 도와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또 오르타는 동티모르 최대 독립운동단체인 「동티모르 레지스탕스 연합」(CNRM)을 이끌어오며 독립문제에 관한 국제사회의 대변인 역할을 맡아왔다.그는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의 침공을 받기 전인 75년부터 유럽연맹과 유엔등을 찾아 포르 투갈 식민의부당함을 강변하는 로비를 펼쳐왔다.이들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겨준동티모르 사태는 동티모르의 짧았던 독립과 함께 시작됐다.
수백년간 포르투갈의 식민통치를 받아온 동티모르는 75년11월포르투갈의 좌파정부가 해외식민지를 포기하면서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독립의 기쁨은 겨우 9일만에 인도네시아의 무력침공으로 끝나버린 것.
인도네시아가 인구 1백만명도 안되는 소국 동티모르를 강점하고있는 것은 동티모르해의 거대한 유전 때문이다.현재 인도네시아인의 90%가 회교를 믿고 있으나 동티모르 인구의 90% 이상은가톨릭교를 믿고 있다.동티모르 사태에 대한 세 계 여론의 관심은 91년11월12일 인도네시아군이 딜리에서 5천여명의 시위군중에 발포,1백명 이상이 숨지는 사건을 일으키면서 일기 시작했다.수상소식이 전해지자 오르타는 즉각 『티모르 교회에 대한 노벨상 수여는 사태해결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벨로.오르타의 노벨상 수상으로 수하르토 인도네시아대통령은 동티모르를 비롯한 국내 인권탄압 문제에 있어 국내외적으로 상당한부담을 안게 됐다.
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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