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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1만km를가다>9.천혜요새 '구게왕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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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니마(尼瑪)를 출발한 탐사팀은 아리(阿里)고원으로 접어들었다.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카이쩌(改則)와 거지(革吉)를 거쳐 인도와 국경이 가까운 국경마을 수취안허(獅泉河)에 도착하는데 꼬박사흘이 걸렸다.국경마을 수취안허는 황량하기 그지없 는 카이쩌.
거지에 비해 훨씬 정돈된 도시였다.우선 비포장이 아닌 시멘트도로여서 지겨운 흙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다음날 구게왕국을 찾아가기 위해 수취안허 공안국의 여행허가를받으러 간 가이드가 『구게왕국을 갈 수 없게 됐다』고 전해 왔다.라싸(拉薩)에서 여행허가서를 내준 공안원이 구게왕국을 여행코스에서 빠뜨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탐사팀은 머리가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공안국 관계자와 몇차례대화를 시도했으나 『구게왕국을 가려면 라싸까지 되돌아가 허가를받아 와야 한다』는 원칙적인 대답만 반복할 뿐이었다.보름 이상걸려 달려 온 라싸까지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 은 구게왕국 답사를 포기하라는 의미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러나 하루종일 답답한 소식만 들으며 기다린 탐사팀에 저녁 늦게 낭보가 전해졌다.구게왕국 여행허가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가이드는 같은 티베트사람인 공안국 관계자를 설득했다고 말했지만 아침부터 안되던 것이 갑자기 뒤바뀐데는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됐다.
어찌 됐건 구게왕국을 찾아갈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에 탐사팀은 단잠을 청할 수 있었다.
이튿날 새벽 칠흑같은 어둠속에 이틀 동안 묵었던 아리빈관(阿里賓館)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새벽 티베트의 하늘에는 별들이쏟아져 내릴 듯 가득했다.출발한지 2시간 지나서야 설산(雪山)멀리 먼동이 터 오기 시작했다.구게왕국으로 가 는 길은 고난의연속이었다.모래 언덕길에 탐사차량의 바퀴가 빠지고 탐사지프의 보닛까지 물이 차는 강물을 건너야 했다.지름길로 접어들자 지원트럭은 길이 좁아 더 이상 갈 수 없어 카일라스산 아래 강디씨빈관(崗底斯賓館)에서 만나기로 하 고 헤어졌다.
탐사팀을 태운 지프는 차 한 대가 가까스로 다닐 수 있는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거슬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5천가 넘는 황막한 고지를 두 차례나 넘은 뒤에야 기기묘묘한 형상의 황금빛 모래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풍광으로 바뀌었다.구게왕국으로 가는 길목으로 들어선 것이다.
언뜻 보기에 모래탑 하나하나가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받아 조각해 놓은 듯 신비했다.모래탑은 사열받는 병사의 모습 같기도 하고 섬세한 조각을 해놓은 성곽 같기도 했다.모래탑이 줄지어선모습은 「조물주의 걸작품」 그 자체였다.
한동안 털털거리며 모래탑 숲을 달리던 탐사차량은 깊게 팬 계곡 너머 자다(札達)마을이 멀리 보이는 길로 접어들었다.햇살이사정없이 내려쬐는 자다마을앞에 자그마한 호수가 있는 것 같았다.호수는 자동차가 움직임에 따라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호수가 아니라 사막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신기루 현상이었다.
사방에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곳에 위치한 자다마을은 30가구 남짓한 토담집들 사이에 나무 몇 그루가 있어 「사막속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구게왕국의 본거지는 자다마을에서 20㎞ 더 들어가는 사파랑마을.사파랑마을을 찾아가기 전에 자다마을 행정기관에서 1인당 중국돈 5백위안(약 5만원)씩 주고 입장권을 사야 했다.외국인관광객에게 내국인보다 턱없이 비싼 입장료를 물리는 중국의 정책이이곳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설레는 마음에 달려간 사파랑마을(해발 4천3백)의 구게왕국은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왕궁이 있었다.높이가 1백70나 되는 계단을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지만 너무 비좁았다.『왕궁은 어디 있느냐』고 관리인에게 묻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이 조그만 건물이 왕궁』이라고 대답했다.
***구 게왕국은 서기 866년 중앙티베트의 불교박해 정책을피해 토번국의 왕족들이 세운 불교왕국이다.7백60여년 동안 남한면적의 2배에 가까운 18만평방㎞의 영토를 자랑했던 구게왕국이지만 왕궁은 생각보다 너무 왜소했다.
왕궁의 면적은 30평 남짓했다.그러나 앞에는 인더스강으로 합쳐지는 강물이 흐르고 좌우와 뒤편은 깊고 넓은 계곡이 자리한 천혜의 요새였다.왕궁을 둘러싼 황토산 암벽에는 8백79개의 동굴들이 벌집처럼 촘촘히 박혀 있고 내려오는 계단을 따라 부처를모신 5개의 사찰이 있었다.관리인이 차례로 문을 열어 준 사찰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벽화와 부서진 불상들이 지난 세월을 말해 주는 듯했다.부서진 불상은 티베트 대부분의 사찰이 그러하듯 문화혁명때 당한 무자비한 탄압의 상처였다.불교신자가 아닌 이방인의 눈에도 안쓰러운 느낌이 들었다.
구게왕국 유적지를 돌아보는 사이에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구게왕국의 잔영도 땅거미와 함께 다시 어둠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고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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