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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내 자본만 발 묶던 금산분리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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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규제를 풀고 보험·증권 지주회사가 제조업 자회사 소유를 허용하는 내용의 금산분리 완화 방안을 내놨다. 이 방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기업이 소유할 수 있는 은행 지분이 현행 4%에서 10%로 늘어나고 사모투자펀드(PEF)를 통해 간접적으로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우리는 정부의 이 같은 정책 전환이 국책은행의 민영화와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당장 민영화가 예정된 산업은행과 우리은행, 기업은행의 경우 국내 산업자본의 참여가 없으면 사실상 민영화가 불가능한 상태다. 외환위기 직후 매각 대상이 됐던 제일은행과 외환은행은 국내 산업자본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외국계 사모펀드에 팔릴 수밖에 없었다. 만일 당시에 산업자본의 참여가 허용됐더라면 그 후에 벌어진 헐값 매각 논란이나 국부 유출 시비는 벌어지지 않았을 수 있었다.

이제라도 국내 산업자본이 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아야 국책은행의 민영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뿐더러 국내 자본을 역차별하는 불합리를 바로잡을 수 있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금산분리 완화를 두고 재벌에 대한 특혜라거나 금융위기의 불씨를 제공한다며 벌써부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금산분리 문제는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우선 이번 금산분리 완화 방안은 재벌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을 전제로 하고 있다.

금융회사와 제조업체가 상호출자나 순환출자 등을 통해 중구난방식으로 얽힌 현행 재벌의 소유구조를 지주회사와 자회사의 형태로 단순하고 투명하게 만듦으로써 소유와 경영 행태가 그대로 드러나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감시와 감독이 훨씬 쉬워진다. 과거처럼 재벌이 금융회사를 편법적으로 사금고화할 소지를 없앤 것이다. 또 금융위기의 조짐이 보일 때 국내 산업자본이 은행의 자본 확충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오히려 위기를 조기에 진화할 수 있다.

금산분리를 완화할 경우 감독 당국은 더욱 엄격한 감독권을 행사해 특혜 시비를 불식시켜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