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북한도발 대응 백악관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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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사태가 벼랑끝에 몰렸을때 미국은 언제나 두갈래의 대조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도발 대상이 한국이면 사태의 심각성이나 예상되는 파장(波長)에 관계없이 미국의 대응은 좋게 말해 「신중」하고 심하게 말해 소극적이다.이 번 동해안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보고받은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이 대뜸 남북한모두의 자제를 촉구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68년 1월21일 북한의 무장특수부대 요원들이 청와대기습을 목표로 세검정까지 침투한 1.21사태때도 미국의 늘쩡한 태도에한국정부의 불만이 컸다.그러다 이틀후 83명의 승무원을 태운 미국해군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 서 나포되자 미국은 즉각 핵항모 엔터프라이즈를 동해안에 급파해 북한을 압박했다.미국의 이런 반응을 본 한국정부의 불만은 배가(倍加)됐다. 69년 4월15일에는 미군의 EC-121이 동해상에서 격추되는 사건이 일어났다.정찰기에는 31명의 미군이 타고 있었다.
미국은 2척의 구축함과 순양함을 동해로 이동시켰다.그러나 이 두사건에 대한 미국의 신속한 대응도 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과 비교하면 강도(强度)와 신속성이 떨어진다.
그해 8월18일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에서 한국인 노무자들이 미군들의 경호아래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를치고 있었다.30명 이상의 북한군인들이 나타나 시비를 건 끝에미군병사 2명을 도끼로 살해했다.주한(駐韓)미 군에 비상경계령이 내리고 오키나와(沖繩)와 미국본토의 기지에서 팬텀전투기 25대,신형 F-111 전투기 15대가 한국으로 급파됐다.
7함대 소속 항모 미드웨이가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며 북한해역으로 이동했다.그것은 휴전이후 미국이 북한에 가한 가장 강력한군사적인 위협이었다.한밤중에 백악관으로 달려간 기자는 그때의 급박했던 분위기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68년의 1.21사태때나 지금이나 미국은 북한의 도발행위로 인한 사태는 일단 「상황 끝」이라 보고 내심으로는 한국의 보복조치를 견제하는데 신경을 썼다.크리스토퍼의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해야겠다.
외교가 국내정치의 연장인 이상 북한의 공격상대가 한국인 경우와 미국인 경우 미국의 대응강도가 다른 것 자체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생각하는대로 이번 사태가 개혁.개방을저지하려는 북한군부의 일관된 강경노선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면북한군의 정찰을 강화하고 항공모함의 이동같은 대북 경고와 경계조치는 필요한 것이다.북한의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인 보복위협은 국무부 대변인 성명 이상의 조치를 요구한다.북한이 또 미국을 상대로 벼랑끝 게임을 하는 것이라면 그 책임은 핵위기때 북한의 엄포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한 미국에 있다.
북한은 다음달 미국 대선(大選)이라는 시한을 두고 게임을 하고 있는 것같다.그러나 미국은 그동안 쌓은 북한과의 합의를 유예상태에 두고도 북한에 가시적(可視的)인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북한이 쉽게 알아듣는 메시지는 항공모함의 이동 이고 공중 조기 경계활동의 강화다.도끼만행때 미국의 강력한 대응이 김일성(金日成)으로 하여금 서둘러 유감의 뜻이 담긴 서한을 미국에 보내게 한 일은 참고할 만하다.미국은 북한의 연착륙을 돕는데도완급(緩急)을 조정해야 한다.북한의 히스테리를 생각하면 끔찍한보복위협을 「늑대소년의 장난」으로만 들어넘길 수는 없다.
김영희 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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