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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청춘들의 나른한 절망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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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05면

‘공산당 선언’ 식으로 말하면 하나의 유령이 2000년대 한국 소설을 배회하고 있다. 백수라는 유령이다. 출몰하는 곳은 옥탑방·고시원·PC방·연립주택 반지하방 등이다. 가끔 아르바이트생·부랑자·양아치·비정규직 노동자로 ‘둔갑’하기도 한다. 딱한 처지를 비관할 만도 한데, 외려 당당하다. “직장 갖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박주영 『백수생활백서』)며 많이 벌어서 많이 먹는 바쁜 인간들에게 “조금씩 먹으면 되잖아”로 응수(구경미 『노는 인간』)한다.

- 2000년대 한국 사회 떠도는 ‘백수 소설’

“하루 일과라는 게 고작 몇 시간씩 게임하고 글 조금 쓰고 다시 게임하고 심심하면 책 읽고, 친구도 안 만나고 운동도 안 하고 청소도 안 하고 열두 평짜리 집 안이 행동반경의 다”인데도(『노는 인간』) 무심하다. “책 읽을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일하기 싫다”(『백수생활백서』)는 너스레도 보인다.

자포자기한 자의 무념(無念)인가 해탈한 자의 무상(無想)인가. 끝이 보이지 않던 외환위기의 터널을 힘겹게 통과하고, 이제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어서인가.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이 금언으로 자리잡은 한국 사회에서, 이들 ‘백수’들은 아등바등 제 살기 바쁜 윗세대에 기세가 눌린 ‘88만원 세대’다. 이들에게 ‘노동’이란 피폐한 사회를 더 악화시키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출근 시간 지하철에 승객들을 밀어넣는 푸시맨으로 일하는 아들은 어느 날 자신이 아버지를 경쟁사회에 밀어넣고 있음을 깨닫는다(박민규 『카스테라』).

『내 머릿속의 개들』(이상운)에서 실업자 주인공은 친구로부터 ‘어마어마하게 뚱뚱한’ 아내를 꼬셔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온 나라가 구조조정에 빠져 있는데, 자기 마누라도 재배치하고 싶다는 거다. “저는 생산성이 형편없는 존재였고 효율성이 엉망인 존재였다”는 고백은 오히려 생산성과 효율성에 가치를 두는 사회에 절망하는 목소리다.

외환위기 직후 한국 소설은 실직한 가장과 가족의 해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했다. 국내 굴지의 은행 지점장이던 아버지가 실직한 뒤 버려진 개들과 자신의 신세를 몽환적으로 교차시키는 ‘애완견’(김현영)이나, 유리공장에서 감원 형식으로 해고된 주인공이 단수(斷水)로 인해 고통받는 상황을 서민층의 박탈감에 빗댄 ‘녹색광선’(조경란) 등이다.

최근 등장하는 ‘백수’ 주인공들은 외환위기에 풍비박산된 중산층 가정의 자녀들이다. ‘백수 소설’로 대표되는 2000년대 소설들을 평론가 황종연은 ‘신빈곤층 문학’으로 규정한다(‘문학동네’ 2007년 가을호). “민주화 이후 한국에 양산되고 있는 빈곤층을 포함한, 새롭게 형성된 하류사회의 정치적 무의식의 한 표상일지도 모른다”는 분석이다.

한때 빈곤은 계급적 연대감을 추동시키는 엔진이었을지 모르나, 젊은 작가들에게 빈곤의 결과는 철저한 고립이다. 성탄절 밤에 은밀한 사랑을 나눌 공간을 찾아 허름한 여인숙 골목을 헤매는 남녀(김애란 ‘성탄절 특선’)를 가리켜 평론가 정여울은 “청년실업 세대의 빈곤은 슬픔을 넘어 공포로, 공포를 넘어 철저한 고립으로 각인된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저항이란 기껏해야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정도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고 호령하던 윗세대의 서슬 퍼런 민중의식 따위는 기대하지 말라. 오히려 ‘일하지 않고 먹지 않겠다’며 사회에 대한 사보타주를 선언하는, 이 유령이 실은 더 무섭다.
글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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