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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메이커와 폭탄주는 왜 다른가-‘흐르는 강물처럼’(로버트 레드퍼드, 1992)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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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07면

한국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칵테일은? 소주와 백세주를 반반 섞은 ‘오십세주’가 한때 유행했고, 최근엔 맥주에 소주를 탄 ‘소맥’을 많이 마시는 분위기지만 그래도 역시 한국의 대표 칵테일은 스카치위스키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 아닐까. 폭탄주가 칵테일이냐고? 칵테일은 원래 증류된 독주(스피릿)에 허브나 감귤류를 첨가한 리큐르, 설탕, 물 등을 섞은 걸 의미했지만 오래전부터 알코올이 들어간 혼합 음료를 통칭하는 말이 됐다.

임범의 시네 알코올

폭탄주는 엄연한 칵테일이며, 그것도 단맛을 가미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칵테일이다. 한국인이 이걸 왜 그렇게 마셔대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설이 분분한데, 그건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이 폭탄주의 족보부터 짚어보자.

내 기억에 검찰이나 군, 신문사 등 뭔가 좀 유별난 데가 있는 집단에 속하지 않은 일반인에게까지 폭탄주가 번져나가기 시작한 게 1990년대 초반인 듯하다. ‘회오리주’ ‘마빡주’ 등 별의별 제조 방법의 등장과 함께 여기저기서 폭탄주를 마셔대던 93년께, 극장에서 한 영화를 봤다.

미국에 금주령이 내려져 있던 1920년대 중후반 몬태나주의 시골 마을. 20대 초중반의 남자 형제가 밀주 집에서 만났다. 늦게 온 형 노먼(크레이그 셰퍼)이 카운터에 앉으며 술을 시킨다. “보일러메이커 둘!” 바텐더가 300쯤 되는 잔에 가득 담긴 맥주와 함께, 우리 식 스트레이트 잔보다 조금 큰 샷글라스에 위스키를 채워서 두 개씩 내놓는다.

노먼은 샷글라스를 맥주잔에 던지듯 집어넣는다. 맥주 거품이 올라오면서 넘쳐흐르는 잔을 들고 ‘원 샷’ 한 뒤 빈 잔 속에 든 샷글라스를 입에 한 번 물었다가 내뱉는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동생 폴(브래드 피트)에게 말한다. “나 사랑에 빠졌다.”

‘흐르는 강물처럼’(로버트 레드퍼드 감독, 1992년)은 소설가 노먼 매클린(1902~90)이 실제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젊을 때 별명이 ‘전도사’였던 노먼은 폭음을 할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그가 과격하게 단숨에 들이켜는 보일러메이커는, 그의 마음속에 처음 피어난 사랑의 가슴 벅참을 동생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전달하는 매개체로 적격이다.

여하튼 그 술, 맥주에 양주를 빠뜨린, 우리 식 폭탄주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그 칵테일의 영어 이름이 ‘보일러메이커’였다. 보일러메이커? 보일러 만드는 사람?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인터넷에 보일러메이커(boilermaker)를 쳐 보니 www.boilermakers.org라는 사이트가 나온다. 이거다 싶어 들어가 봤더니 진짜 보일러공들의 노조 사이트였다. 그런데 그 사이트에 이런 글이 실려 있었다.

‘왜 위스키에 맥주를 함께 마시는 걸 보일러메이커라고 부르나?’ 제목 바로 뒤에 붙은 답은 이렇다. “아무도 모른다. 최소한 우리는 (아는 이를) 찾지 못했다.” 술 이름이 돼버린 명칭의 원 소유자들이 그 기원을 찾아 나섰는데도 찾지 못했다면 누가 찾을까. 확실한 답은 모른다고 하면서도 이 보일러공들은 이런저런 설명들을 덧붙여놓았다.

거기에 따르면 이렇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증기기관차를 만들고 수리하는 이들을 일컫는 ‘보일러메이커’라는 명칭이 1834년에 처음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는 스팀 엔진이 나온 지 60~70년이 지나 증기선이 북아메리카를 수시로 들락거리고 증기기관차가 그곳의 지도를 새로 그리고 있어서 진작부터 ‘보일러메이커’가 술의 명칭으로 쓰이고 있었다고 어원학자들은 말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이어 “(보일러를 다루는) 기능공들보다 술이 먼저 이름을 가져갔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언어의 발달이 꼭 논리적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라며 이런 일화를 덧붙인다. 리처드 트레비식이라는 영국의 대장장이가 1801년에 증기기관으로 가는 자동차를 만들어 주행에 성공한 뒤 언덕에 세워놓고 차의 보일러를 끄지 않은 채 술(아마도 폭탄주)을 마시는 사이에 자동차가 과열로 타버렸단다.

‘워낙 세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큰일 낼 수 있다는 점’이, 직업인 보일러메이커와 술 보일러메이커의 공통점이어서 명칭이 같지 않을까 하는 추리로 이 글은 끝을 맺고 있다. 다른 자료엔 보일러메이커라는 술이, 양주를 원 샷 하고 바로 맥주를 마시는(비어 체이서) 것이라고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보일러공 노조 사이트엔, 양주잔을 맥주잔에 빠뜨린 뒤 입을 떼지 않고 한 번에 마셔야 보일러메이커가 된다고 나와 있다.

영화로 돌아오면 주인공 노먼은 평소 모든 일을 규범대로 해왔던 것처럼 보일러메이커도 그렇게 마셨다. 형보다 더 예민하고 거친 성격인 동생 폴은 양주잔만 비우고 일어선다. 폴은 얼마 뒤 도박판에서 시비 끝에 살해된다.

노먼의 아버지와 노먼 형제, 셋이 강에서 플라이 낚시 하는 모습을 형제가 커가는 단계마다 보여주며 사람이 살고, 사랑하며, 죽어가는 것에 대한 단상들을 시처럼 엮어 넣는 이 영화의 느낌은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노먼 아버지의 설교 내용 속에 잘 살아있다. “우리는 살면서, 사랑하는 이가 도움을 청하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좀처럼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지 못하며, 우리가 준 것이 불필요한 것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충분한 이해가 없더라도 충분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 사이의 어쩔 수 없는 거리는, 아무리 가까운 이라도 정말 필요한 걸 도와줄 수 없게 만든다. 그럼 어쩔까.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이 말은 얼핏 공허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영화를 보면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솔직하고 겸손한 태도로 사랑해야, 그게 사랑일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이 영화야말로 오랫동안 숙고하며 살아온 이들이 쓰고 연출한 영화 같다.

이 영화에서 어쩌다 기분이 정말 좋을 때, 흥에 겨워 한잔 마시는 술로 나오는 보일러메이커, 즉 폭탄주가 한국 영화로 넘어오면 만용과 광란과 낭비의 상징처럼 등장하게 된다. 거기엔 그런 이유가 있을 터. 다음 기회에.


임범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거쳐 영화판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시네필로 영화에 등장하는 술을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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