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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친 목축업의 추악한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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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어린 아이의 눈을 통해 산업화된 목축업의 야만적이고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짤막한 소설이다. “내 친구들은 말한다. 돼지는 뚱뚱하고 더럽고 무섭다고. 쥘리는 돼지를 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돼지를 키우는데 말이다. 하지만 쥘리는 자기 아버지를 사업가라고 한다 … 돼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돼지의 권리는 지워지고 없다.

양돈장에는 종종 병든 돼지가 있기 마련이다. 돼지는 몸집이 너무 커서 살아있는 채로 끌어내기 힘들다. 병든 돼지는 고통을 견디며 꿀꿀거린다. “처음엔 아파서 죽어가는 돼지만 봐도 가슴이 아팠다. 돼지를 죽여야 했지만 차마 죽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하지만 이젠 견딜 수 있다. 차라리 돼지가 고통받는 시간을 줄여주기로 했다”라는 선배들의 말에, 양돈장에 갓 입사한 로베르가 그 역할을 맡았다.

로베르는 돼지에게 공기총을 쏘았다. 한 방에 돼지가 죽기를 바랐지만 돼지는 죽지 않고 맹렬하게 비명을 질러댔다. 그는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돼지는 더 크게 요동쳤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그는 다시 총을 쏘았다. 그제서야 돼지는 조용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숨을 몰아쉬었다. 로베르는 주인공 어머니를 찾아와 울면서 그때의 상황을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나도 우리가 야만인이 아닌지 생각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라며 로베르를 달랬다.

양돈장의 작업반장인 레미는 돼지를 싫어했다. 축전지를 들고 다니면서 돼지에 접근, 축전기에 연결된 바늘로 돼지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찔렀다. 그럼 돼지는 비명을 지르면서 펄떡 뛰었다. 혹여 돼지가 몸에 닿기라도 하면 그는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돼지를 동물이라 생각지 않았다. 그에게 돼지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떤 동물이든 살아있을 때는 동물이지 고깃덩이가 아니잖은가!

우리는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돼지와는 정겹게 지내지 못하는 것일까? 왜 돼지를 배려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돼지는 무척 영리하다. 애완견 못지않게 재롱도 피우고 무척 사랑스럽기도 하다. 돼지는 사람 말을 잘 알아듣기도 한다. 그런데 왜 레미는 돼지와 전쟁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일까? 돼지 덕분에 돈까지 벌면서. 돼지를 때리기는커녕 오히려 돼지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주인공은 그 이유를 만물박사인 숙모에게 물었다. 숙모는 ‘시스템’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스템에서 중요한 것은 돈이다. 하기야 돼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돼지를 물건 취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는 하다.

산업화된 양돈장에서는 인간과 동물 모두가 고통받는다. 인간과 동물이 어떤 고통의 대가를 치르던 고기를 생산해야 한다는 목표 밖에 없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마음도 강퍅해지고, 그곳에서 사육되는 동물도 불쌍할 따름이다. 환생이 정말로 존재하다면 산업화된 사육장의 돼지로 태어나느니 환생을 포기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동물을 처음에 사육한 목적은 노동력을 얻기 위해서였다. 동물에게 일방적으로 일을 시키지 않고 동물과 함께 일했다. 함께 일하기 위해서, 즉 노동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야 했다. 돼지, 코끼리, 개, 낙타, 어떤 동물과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동물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결국, 함께 자유롭게 사느냐, 아니면 함께 갇혀 사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강주헌

◆조슬린 포르셰(Jocelyne Porcher)=동물학 박사이자 사회학자. 2003년부터 프랑스 국립 농업연구소 연구원을 일하고 있다. 직접 가축을 사육한 경험을 바탕으로 목축산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동물 간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목축업자와 동물』(PUF)을 비롯해 4권의 책과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크리스틴 트리봉도(Christine Tribondeau)=브르타뉴 지역의 산업화된 양돈장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특히 9년 동안 돼지의 출산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이 소설이 처녀작이다.



강주헌은 불어·영어 서적 전문번역가로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등 다수의 촘스키 저서와 『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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