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어린이책] 지금 행복하니? 그게 제일 소중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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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길고양이 방석』

박효미 글, 오승민 그림, 사계절
184쪽, 8800원, 초등 3~4 학년

 “인생아, 넌 즐겁니?” 아이들에게 스스로 묻게 해보자. 어떤 대답이 올까. 주인공인 지은이는 엄마의 ‘외고를 가려면’이라는 주문에 걸려 자기 스스로 해본 일이 없다. 글짓기는 뭘 쓸지, 그림은 뭘 그릴지 말이다. 숙제는 모조리 엄마가 해줬고 지은이는 외고를 가기 위해 공부만 해야 했다.

지은이에게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진 유리가 나타난다. 10월 25일, 반 학예회가 다가오자 유리는 지은에게 함께 공연 준비를 하자고 말한다. 지은이가 “엄마한테 물어보겠다”고 하자 유리가 놀란다. “너 열두 살이야, 열두 살이면 자기 일을 조금씩 결정하기 시작하는 거란 말이야.” 지은이는 이 한 마디에 자신이 지금껏 살라온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오히려 구루병을 앓고 있는 동생 지명의 삶이 더 자유로울 것 같다. 매일 지명이만 돌보는 엄마는 아빠의 반대에도 지명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친구들과 마음껏 어울리게 했다. “지명이에겐 지금 행복한 것이 중요해”라는 이유에서다.

지명이가 부러운 지은이는 학예회 날과 교육청 영재 선발 날짜가 겹치자 ‘내 삶’을 찾기 위해 학예회에 참석한다. 엄마는 지은이에게 “별 볼일 없는 사람이어서 할머니에게 무시당했던 나와 아파서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지명이와는 네가 다르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며칠 후 지명이는 일곱 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어린이집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고구마를 캤던 뒷산에 묻힌다. 지은이는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지명이의 소리를 듣는다. “누나, 난 잠깐 나들이 나온 거였어, 날마다 재밌진 않았지만 좋을 때가 더 많았어.”

작가는 지은이 가족과 주변인을 통해 ‘현재의 시간’을 즐기며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역설한다. 엄마의 이루지 못한 소망과 동생 몫까지 살아내야 하는 의무감으로 삶이 버거운 지은이, 몸이 아파 길고양이 방석에 몸을 의지하며 짧은 생을 살다 간 지명이, 고부간의 갈등 속에 아픈 아들과 공부만 해야 하는 딸을 옆에서 지켜보는 아빠, 그리고 엄마. 각 장마다 나오는 지명이의 독백 형식의 일기는 이런 일상 장면을 일곱 살짜리 아이의 눈으로 표현해 더욱 마음을 아린다. 동화지만 가족이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현재 아이들과 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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