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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가는길>경남 고성 문수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무이산(武夷山)정상 바로 아래 문수암(文殊庵)은 다도해의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청담(靑潭)스님 사리탑이 있는 곳에 서면 소나무 가지 사이로 쪽빛 남해가 더욱 가까이 보이는데,연화도.욕지도등 큰섬 사이에 처녀 섬들이 징검 다리처럼 놓여 있음이다.
문수암은 신라 선덕여왕 5년(685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문수암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이런 설화에서 유래하고 있다.
의상대사가 남해 보리암으로 가던 중 날이 저물어 고성지방에서머무르게 됐다고 한다.다음날 아침 두 걸인을 만난 의상대사는 간밤 꿈에 나타난 노승의 부탁을 들어 그들과 한 밥상에서 공양을 같이하게 되는데 그 걸인들이 바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었던것.노승은 의상대사를 돕기 위해 꿈속까지 따라온 관세음보살이었고 이윽고 의상대사는 보리암으로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두 걸인을 따라 지금의 암자터에 섰더란다.그제야 두 걸인중에 한사람이 문수보살로 바뀌면서 『의상아! 』하고 부르더니 커다란 바위사이로 홀연히 사라져버리더란다.그래서 의상대사는 그 석벽(石壁)아래 문수단(文殊壇)을 조성하고 암자를 지었다는 이야기다.
문수암에 들어가 참배하려는데 기도를 막 시작하려는 두 비구니스님 중 한 스님의 옆모습이 낯익다.나그네는 너무 반가워 스님의 법명을 두어번 부른다.그러자 스님은 뜻밖이라 얼굴이 붉어진다.암자옆에 핀 배롱나무 꽃잎 빛깔이다.
그래도 당찬 모습은 여전하다.천일 기도중인데 벌써 반을 넘겼다고 한다.남성화한 목소리가 얼마나 지독하게 염불하며 기도했는지를 짐작케 하는 것이다.그런데도 스님은 안개 탓으로 돌린다.
『이곳은 여름 내내 안개 속입니다.목이 잠긴 것은 기도를 열심히 해서라기보다는 안개 때문이에요.관광객들에게는 안개가 멋있겠지만 수행하는 스님들에게는 독(毒)같지요.』 스님의 안내를 받아 나그네도 암자의 최고 성소(聖所)인 문수단에 서본다.희미하게 빛이 들어가는 석벽 사이로 천연(天然)의 문수보살상이 있다는 것이다.의상대사를 이곳까지 안내해 성불케 한 문수보살이 계시다니 그저 신비할 뿐이다.
『처사님.문수보살님이 보이세요?』나그네는 명경지수가 되지 못해 그런지 상(像)이 잘 안잡힌다.그러나 간절히 기도하고 나면누구의 눈에라도 틀림없이 보인다고 하니 종교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빗자루로 쓸어놓은듯 아침 바다가 정갈한 다음날에도 나그네는 모듬발을 하고 문수단 앞에 서보지만 역시 마찬가지.그래도 암자에서 아침을 맞는 나그네는 신선이 된 기분이다.고성읍 쪽에서 치솟아오르는 아침해의 빛살로 세수를 하고,남해의 아침 바닷물에눈을 씻을 수 있음이다.
▶가는 길=고성군상리면 문수암주유소에서 20분 정도 승용차로오르면 암자에 이른다((0556)72-8078).
글=정찬주〈소설가〉 사진=김홍희〈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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