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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어머니가 아기에게 하듯 가볍고 부드러우나 깊은 애정 표현으로서의 입맞춤이었다.
성적(性的) 표시가 아닌 키스도 남녀간에 가능하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러나 얼 켄트는 곧 얼굴을 옆으로 돌려 을희의 입술을 피했다.고통이 번개처럼 그의 옆 모습을 그어 지났다.
-아,얼! 피하지 말아요.정말 당신을 사랑해요.육신은 한낱 껍질에 불과해요.영혼을 싸고 있는 부대,예지(叡智)를 담고 있는 자루일 뿐인 것을….
속으로 외치며 을희는 울고 있었다.
성생활이 없는 부부가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그들은 신체적인 장애로 인하여 섹스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 장애로 섹스하지 않는 것이다.그들이 혹간 순간적인 육욕으로 행위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짐승으로서의 얼림일 뿐이다.그런 섹 스를 지긋지긋하게 강요받아왔다.그리고 끝내는 그런 강요조차도 받지 않았다.그래도 형식상은 부부였다.그 이상의 자기기만이 어디 있는가.
얼 켄트의 영혼과 예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영혼과 예지를 담고 있는 장애의 육신까지도 사랑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얀 가운을 걸친 딸이 서재로 들어왔다.아버지의 목욕시간이라했다. 욕실까지 따라갔다.
청결한 에메랄드 빛 커튼이 드리워진 욕실 바닥은 두툼한 향나무로 메워져 있었다.켄트교수가 미끄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마루 한가운데 큼직한 비닐제 물침대가 놓여 있다.이 물침대에 켄트교수를 눕혀 목욕시키는 것이다.
딸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버지를 물침대 위에 눕히며 말했다.
『리빙 룸에서 쉬십시오.음악을 틀어놨습니다.브람스를 좋아하십니까?』 사강의 소설 제목에 빗대어 물으며 그는 웃었다.재치있는 아가씨다.보조개가 파이는 웃음이 귀여웠다.
『브람스보다 지금은 샤워소리가 더 좋겠어요.』 을희는 같이 돕게 해달라며 맨발로 욕실에 들어섰다.
『옷이 다 젖을텐데요.』 딸이 말렸다.
『벗지요.』 을희는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훌훌 벗고 슈미즈 바람이 됐다.
켄트교수는 다시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딸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밝은 목소리로 응했다.
『그럼, 나는 저녁식사 준비를 할게요.잘 부탁합니다.』 목욕시키는 요령을 가르쳐주고 나서 그녀는 욕실에서 나갔다.
을희는 슈미즈도 벗고 알몸이 되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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