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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세 춤꾼의 살풀이 … 관객 홀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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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매방씨가 손수 지은 한복을 입고 살풀이 춤을 추고 있다. [프리랜서=오종찬]

9일 오후 6시 40분쯤 전남 목포시 시민문화체육센터 대공연장 분장실. 전통춤 명인 이매방(81)씨는 연보라색 두루마기와 옥색 바지, 자줏빛 목도리로 단장해 고왔다. 하지만 허리가 굽은 데다 몹시 야위어 남녀 제자가 양팔을 부축하는 데도 걸음이 비척거렸다.

‘저런 몸으로 춤을 출 수 있을까’하는 걱정은 잠시, 이날 오후 7시30분 목포시립무용단 제25회 정기공연에 특별 출연한 그는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 같았다. 혼자 살풀이춤을 추는 동안 무대에는 비장감과 신비한 기운마저 돌았다. 압도당한 객석에서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자인 김효분(50) 목포시립무용단 상임안무자와 함께 굿거리 장단에 맞춰 입춤(일명 허튼춤)을 추면서 그만의 애잔하면서도 세련된 몸짓을 뽐냈다. “역시 이매방이야.” 객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고향이고, 또 제자가 청하는데 어떻게 마다하나. 굽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느라 아파서 죽는 줄 알았어.”

그는 6년 전 위암 수술을 받고 58㎏이던 몸무게가 45㎏으로 줄었다. 혼자서는 잘 걷지도 못 한다. 그러면서도 서울 양재동 자택·연습실과 목포 전수관을 오가며 후학들을 가르치며, 크고 작은 무대에 서고 있다.

“춤을 추다 ‘이 대목에서는 사람들이 울어야 하는데, 안 그러면 어쩌나’하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슬쩍 객석을 보지. 눈물을 훔치는 관객이 눈에 들어오면 ‘아! 내 춤이 아직은 살아 있구나’하고 정말 기분이 좋지. 그때 춤을 한 보람을 느껴.”

제자들에게도 여전히 ‘호랑이’ 같은 선생님이다. 별명 중 ‘술고래’ ‘골초’는 위 수술 뒤 없어졌지만, ‘욕대장’ ‘욕보’는 여전하다.

“요새 한복들 다 엉터리야. 치마만 해도 서양 드레스처럼 아래가 쫙 펴지는데, 원래는 항아리 모양이 나와야 해. 나더러 바느질도 인간문화재감이라고들 하지.”

그는 지금도 바지·저고리·치마는 물론 두루마기까지 손수 지어 입고 무대에 오른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아 100년이 넘은 것을 포함해 재봉틀이 다섯 개나 된다. 김치도 손수 담가 먹는다.

“인간은 양성을 다 가지고 있어. 내가 여자 기질이 있는데 거기서 춤이 나오고 예술이 나오는 거야. 세계적으로 남자 무용가들 가운데 동성애자가 많아.”

그는 요즘 세태에 대해 “외국 것에 환장해 우리 것을 너무 무시한다”라며 글로 옮길 수 없는 욕설까지 쏟아냈다.

“춤도 객석에서 ‘좋다’하고 추임새를 찔러 주면 신명이 나 더 좋은 춤이 나오는데, 무식하다 소리 들을까 봐 서양 것 공연처럼 조용히 구경하는 판국이 되어 버렸어. 우리 춤판은 그게 아닌데.”

그는 자신의 춤이 원형대로 이어질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진짜 춤맛을 알려면 10년은 공부해야 하는데, 달랑 5년 해 이수증을 받으면 ‘다 배웠다’ 하고 자기 맘대로 춤을 춰 대는 거야. 또 ‘문화재병’ ‘교수병’에 걸린 인간들이 많아. ”

이씨의 부인(김명자·65)은 부산에서 전통춤교습소를 하고 있다. 47세에 얻은 딸(이현주·34)은 현대무용을 전공했으나 방향을 바꿔 아버지의 춤을 잇고 있다. 현대무용을 하는 사위(이준철·34·우석대 무용학과 강사)를 맞은 데 대해서는 “자식 일은 마음대로 못하잖아”라고 말했다.

이해석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이매방=1927년 목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중국 베이징에서 경극 배우 ‘매란방’을 사사한 인연으로 84년 본명 ‘이규태’를 버리고 예명 ‘이매방’을 호적에 올렸다. 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 예능 보유자로 지정됐다. 누나들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거울 앞에서 놀곤 하다 7세 때 목포 권번에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16세 때 처음 무대에서 승무를 췄다. 그의 아버지는 8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조선 제일의 춤꾼’이 된 이씨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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