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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의원님들 커피 맛까지 챙기는 국정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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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정감사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국정감사장에서 우스꽝스러운 문건이 목격됐다. 서울대가 감사 나온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의원 명단을 특이하게 만들었다. 각 의원 이름 밑에 어떤 차를 좋아하는지, 커피는 어떻게 타야 그분들 취향에 맞는지 등을 적어놓은 것이다.

서울대는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는 곳이다. 이런 서울대가 감사와 무관한 접대용 노하우를 문건으로 만들어 준비할 정도니, 다른 피감기관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우리 국감의 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접대용 과공(過恭)은 이뿐이 아니다. 피감기관들은 의원의 식사 접대를 위한 입맛과 저녁 술자리 취향까지 챙기곤 한다. 보좌관과 운전기사 등 수행원들의 휴식공간과 식사 대접까지 준비한다. 지난해 같은 위원회의 대덕연구단지 감사에선 저녁 술자리가 2차로 이어지는 성 접대 논란까지 있었다.

선진국의 경우 아무리 높은 사람이 모인 회의라도 생수 한 병으로 족하다. 쉬는 시간엔 셀프 커피와 쿠키 몇 개로 끝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피감기관이 불필요한 의전에 노심초사할까.

무엇보다 의원들의 구시대적 권위의식이 문제다. 조금만 기분에 거슬려도 기관장에게 호통부터 치는 의원이 많다. 위세를 부리거나 피감기관의 군기를 잡겠다는 구태다. 혼쭐난 기관장은 부하직원을 질책한다. 실무 담당자는 보신하고자 과공하기 마련이다.

제도적인 문제도 있다. 국감이 불과 20일에 불과한데 감사 대상 기관은 500곳이 넘는다. 위원회의 감사 일정이 빠듯하다. 의원 개개인에게 할당되는 질의시간은 10분 내외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수박 겉핥기식 감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의원들은 겉형식에 집착하고, 피감기관은 ‘일단 피하고 보자’는 태도를 보이기 마련이다.

국감이 더 이상 웃음거리여선 안 된다. 의원 개개인의 자질 향상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국회는 소위원회와 청문회 제도를 활성화하는 등 내실을 꾀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